[허스토리] 남자도 총리 할 수 있나요?

입력
2021.11.20 19:00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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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Words : 여성의 언어

현재 우리나라에는 여성의 이상주의와 투지가 필요하다.
그 어느 분야보다도 정치에 필요한 것 같다.
-미국 의회 최초의 흑인 여성 의원 셜리 치좀

Her View : 여성의 관점


(32) 남자도 총리 할 수 있나요? (11월 11일자)

독자님, 안녕하세요. 독일의 10대 청소년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해요. "남자도 총리 할 수 있나요?" 어릴 때부터 총리라고는 한 명만 봐 왔기 때문이죠. 2005년부터 16년 간 독일을 이끈 앙겔라 메르켈 총리. 독일의 첫 여성 총리이자 최연소 총리, 동독 출신의 첫 총리라는 수식어를 달고 출발한 그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2009년 유로존 금융위기, 2015년 난민 사태, 코로나19 사태 등을 극복하며 합리적이고 포용적인 리더십을 보여주었습니다. 지난달 치러진 독일 총선 결과에 따라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정계에서 은퇴할 것을 선언하면서 벌써부터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그는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총리로도 기록되었습니다.

이번 주 허스토리에서는 메르켈 총리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여성 정치 지도자' 소식을 그러모아 소개합니다. 어떤 정치적 토양 속에서 여성 정치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는지, 2022년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지도 함께 고민해 봐요.


▦ 지구촌 소식: 여성 리더십이 역사를 쓰고 있다

'역사상 최초'라는 수식어를 단 여성 정치인들의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반가운 한편, 아직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에요. 여전히 여성에게 자리가 주어지지 않은 분야가 많다는 뜻이니까요. 최근 들려 온 '최초'의 소식들 함께 나눠볼게요.

▶최초의 여성 총리: 마그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재무장관이 지난 4일 집권당인 사회민주당 당대표에 선출됐습니다. 스테판 뢰벤 현 총리가 사임하고 의회에서 동의를 얻으면 안데르손은 145년 만의 첫 여성 총리가 됩니다. 이로써 북유럽에선 4개국을 여성 총리가 이끌게 될 가능성이 커졌는데요. 덴마크의 메테 프레데릭센, 핀란드의 산나 마린, 아이슬란드의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총리 모두 여성입니다. 지난 9월 총선에서 패배할 때까지 총 8년을 재임한 노르웨이의 에르나 솔베르그 전 총리도 여성이었어요.(→ 스웨덴의 첫 여성 총리가 궁금하다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110508000002245)

▶최초의 여성 시장: 독일 베를린은 여성 시장 1호 배출을 앞두고 있습니다. 지난 9월 치러진 선거에서 프란치스카 기파이가 승리를 거뒀거든요. 2차 세계대전 직후 분단 시기에 서베를린 시장을 지낸 루이즈 슈뢰더(1949~1951년 재임) 외에 지금까지 베를린에서 여성 시장은 없었어요. 현재 유럽에서는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웨덴 스톡홀름, 노르웨이 오슬로, 아일랜드 더블린, 불가리아 소피아 등 각국 수도의 시정을 여성 시장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 독일 통일 후 베를린의 첫 여성 시장이 궁금하다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92811330001769)

▶최초의 여성 상ㆍ하원의장: 지난 4월 미국 워싱턴 연방 의회 의사당에서는 대통령 연단 뒤 상원ㆍ하원 의장석을 모두 여성이 채우는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겸 상원의장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그 주인공이죠. 해리스 부통령은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평범한 일"(normal)이라고 대답했다고 해요. 의장석을 모두 여성이 채운 것은 '최초'였지만, 앞으로는 이 모습이 더욱 특이하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는 의미였겠죠? (→ 의장석 두 자리를 채운 여성들이 궁금하다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1042916310005764)

▦국민의 재신임을 받은 여성들

여성이 정치에 들어서면 새로운 풍경이 만들어집니다. 남성 중심 사고방식에 균열이 생기고, 소외되었던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출중한 능력과 리더십까지 인정받은 여성 지도자들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넘어 국민들의 높은 신임을 얻고 있어요.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는 2017년부터 총리직을 맡고 있는데요. 전 세계에서 재임 중 출산을 한 두 번째 국가 지도자이자 6주의 출산휴가를 사용한 최초의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아던 총리의 소수자에 열린 정책과 더불어 성공적인 코로나 방역으로 집권당인 노동당은 지난해 뉴질랜드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고, 아던 총리도 연임을 하게 됐습니다.

2016년 당선된 타이완의 첫 여성 총통인 차이잉원 총통. 그는 2012년 선거에서 패배한 후 '정부의 정책 입안자가 마련한 정책이 정말로 국민의 정서나 필요와 맞아떨어질까?'를 고민하며 4년 간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죠. 지난해 재임에 성공했는데요. 타이완 총통 직선제 시행 이후 최고 득표를 얻었습니다.

프랑스 파리 최초의 여성 시장인 안 이달고는 2014년부터 시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되기 전, 2001~2014년 무려 13년 동안 파리 부시장을 맡았는데요. 시정 능력을 발판으로 지난달 사회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그는, 첫 여성 프랑스 대통령에도 도전합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세계에서 최초의 기록이 새로 쓰이는 동안 우리는 '유리천장이 여전하다'는 기사를 더 많이 접하는 것 같아요. 국제의원연맹(IPU)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에서 한국은 19%로 121위에 올라 있습니다. 17개 광역단체장 중 여성이 당선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정치는 물론 경제ㆍ사회 분야에서의 여성 진출은 아직도 갈길이 멀어요.

앞서 언급된 나라들은 기초의회부터 중앙까지 여성들이 진출해 있는 비율이 높습니다. IPU에 따르면 여성 의원 비율은 뉴질랜드 49.2%, 아이슬란드 47.6%, 스웨덴 47%, 핀란드 46%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에요. 그러나 이 나라들도 처음부터 여성의 정치 참여가 활발한 건 아니었어요. 역량과 자질을 갖춘 여성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당제가 정착돼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고, 비례대표제를 통해 소수자들을 공천에서 배제하지 않을수록 여성의 정치참여가 활발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우리 정치에 필요한 것도 정당 차원의 여성 공천 확대, 여성 정치인의 경력 유지를 위한 지원과 양성, 그리고 여성의 대표성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해 나가는 자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선거제도뿐 아니라 가정과 교육, 노동 시장, 정치에 이르기까지 사회 곳곳에 성평등이라는 토양을 만들어 가야겠지요.

메르켈 총리는 퇴임을 앞두고 독일 사회 변화에 대한 의견을 이렇게 밝혔어요. "만약 패널 토론이 전부 남자들로만 이뤄졌다면, 20년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더 이상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무언가 빠진 게 있다'고 여길 것이다"라고요. 우리도 이렇게 변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믿어요. 마침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메르켈 총리의 말로 갈무리합니다. "페미니스트는 본질적으로 사회와 삶 전반에 대한 참여의 의미에서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는 사실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 고도 말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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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Story : 여성의 이야기

더 많은 여성 정치인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함께 읽어요! 올해 세계여성의날에 맞춰 발간되었던 장영은 교수의 책입니다. 프랑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낙태죄 폐지를 이뤄낸 시몬 베유,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 '월가의 저승사자' 엘리자베스 워런,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을 이끌었던 에멀린 팽크허스트 등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요.

무엇보다 저는 정치가 '정치인이 아닌' 사람들의 행위이기도 하다는 점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자신이 선 자리에서 '몫이 없는 이들의 몫을 찾아주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그 자체가 바로 정치적인 행위이기 때문이에요.

'말괄량이 삐삐'를 쓴 작가 아스트린드 린드그렌, 미국의 포크가수 존 바에즈가 이 책에 포함된 이유입니다. 스웨덴에서 세계 최초로 체벌금지와 부모 폭력 금지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폭력 속에서,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부모가 휘두르는 폭력 속에서 첫 가르침을 받았을까요?"라는 린드그렌의 호소가 있었습니다. 존 바에즈는 자신의 콘서트 현장에 흑인 관객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걸 깨닫고 흑인이 공연장에 들어오지 않으면 노래를 할 수 없다는 조건을 계약서에 내걸었습니다. 전 세계를 다니며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고요.

이처럼 글을 쓰거나, 노래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나무를 심는 방법으로, 또 법과 제도를 고치거나, 독재자에 저항하거나, 선거 운동에 뛰어드는 방법으로 저마다의 정치를 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함께 읽으며 우리가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주 뉴스레터를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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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