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5일 후 15시에 죽는다."
당신의 눈앞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 지옥행을 고지한다. 예고한 시각이 되면 어김없이 지옥의 사자가 나타나 당신을 무참히 불에 태워 죽인다. 이는 신의 행위(천벌)일까, 살인일까. 인간을 벌하고, 겁주면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영화 '부산행'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연상호 감독이 이번엔 '지옥'의 세계로 초대한다. '지옥'은 그가 시나리오를 쓰고, '송곳'의 최규석 작가가 그림을 그린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6부작 시리즈다.
'지옥'을 연출한 연 감독은 16일 열린 비대면 제작발표회에서 "이 작품 속 캐릭터들은 모두 우리 사회에 있을 법한 인간들"이라며 "다만 각자 가진 신념이 다른 인물들인데 그 신념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와 자신의 신념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지옥'은 초자연적 현상을 신의 행위이자 정의구현이라고 믿는 신흥 종교 단체 새진리회와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포가 인간을 참회하게 만든다고 믿는 새진리회 의장 정진수(유아인)가 한 축이다. "사람이 만든 법 체계가 정의로울까"라고 묻는 그의 대척점에는 변호사 민혜진(김현주)이 서 있다. 나쁜 놈이든 착한 놈이든, 세상을 구하려는 목적이든 재미였든 살인을 한 놈은 잡는 게 우리 일이라고 믿는 경찰 진경훈(양익준)과 그저 평범하지만 가장 소중한 사람이 고지를 받으면서 사건의 중심으로 휘말려드는 방송사 PD 배영재(박정민)와 그의 아내 송소현(원진아), 정진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무리 화살촉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의 면면을 그린다. 이들의 신념은 제각기 충돌하며 아수라장이 펼쳐진다.
초자연적 현상을 배경으로 하지만 충분히 현재의 은유로 읽히는 지점은 강력한 흡인력을 갖는다. 박정민은 "과연 이 초자연적 현상이 지금 우리의 현실에 반영이 돼 있지는 않을까 의문이 들더라"며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원진아는 "굉장히 비현실적인 배경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에서 충격을 많이 받았다"며 "어떤 집단에서 조금 덜 건강하고, 조금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지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에서는 지옥이 직접 묘사되진 않는다. "지옥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옥을 상상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현실에서의 지옥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연 감독의 말이다.
'지옥'은 연 감독의 독창적 세계관 안에서 펼쳐진다. 평점 9.77에 빛나는 그의 네이버 웹툰 '지옥'을 영상화한 게 이번 작품이다. 연 감독은 원작 각본에 이어 시리즈 연출과 공동 각본을 맡아 '지옥'의 실사화를 이끌었다. 그가 웹툰의 원작자인 만큼 고스란히 영상으로 옮겨졌다. 연 감독은 "언제든 가고 싶을 때 가서 새로운 놀이를 할 수 있는 영화적으로 놀 수 있는 세계, 저의 영화적인 놀이터를 만들고 싶었다"며 "이번 '지옥'의 세계관이 그 첫 번째 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주 극단적인 설정 안에서 여러 종류의 인간 모습을 보여줄 수 있고, 계속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는 세계관"이라고 덧붙였다.
오는 19일 공개되는 '지옥'은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공개 전부터 토론토국제영화제, BFI 런던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되면서 입소문을 탔다. 유아인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때 함께 관람했는데 관객들이 미동도 없이 집중하고 있는 기운을 뒤에서 느꼈다"며 "저도 같이 함께 빠져들게 되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박정민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느낄 법한 공포고, 혼란이라서 어쩌면 오히려 해외에서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겠다 싶다"고 했다.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이 또 한번 전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