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알았다면 화장장을 유치하지 않았을 겁니다."
17일 오전 광주 북구 효령동 제2시립묘지(영락공원). 이곳에서 만난 효령영농조합법인 관계자는 대뜸 새된 목소리를 냈다. 그는 "마을 주민들이 혐오시설을 자진 유치한 대가로 광주시로부터 영락공원 내 장사(葬事)시설 부대사업 위탁 운영권을 넘겨받았지만 손가락만 빨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이 조합법인을 결성한 뒤 '영락공원 안에서' 봉안함과 묘비, 묘목, 명패 등을 판매해 왔는데, 수년 전부터 특정 장의용품 판매업체들이 '영락공원 안팎에서' 유족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는 탓에 매출이 뚝 떨어졌다는 얘기였다. 이 관계자는 "영락공원 밖 영업을 막을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광주시(도시공사)가 마냥 손을 놓고 있을 게 아니라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지만 꿈쩍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최초로 혐오·기피시설인 공원묘지를 자진 유치했던 효령동 4개 마을 주민들이 최근 단단히 뿔이 났다. 민간 장례용품 업자들이 주민들의 영업권을 위협하고 있는데도 광주시가 뒷짐만 지고 있어서다. 주민들은 "광주시가 조합 수익 감소를 호소하는 주민들에게 장사시설은 이윤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분노했다. 광주시가 "장사시설 부대사업은 공익사업"이라면서 정작 공익사업을 하다가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나 몰라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광주시의 태도 변화가 없다면 거리로 나서겠다"고 벼르고 있다.
17일 현재 효령영농조합법인 조합원은 83명. 이들은 1999년 영락공원을 유치한 뒤 영락공원 내 매점·식당 관리 운영과 유골함·명패·비석 판매, 자연장에 필요한 개인식별용 명패 및 천연 소재의 용기, 마사토 공급 판매 등을 맡았다. 광주시가 혐오시설을 스스로 끌어안아준 데 대한 보답 차원에 주민들과 협약을 맺어 장사시설 부대사업 운영권을 준 것이다. 2000년대 초반 100만~300만 원대에 머물렀던 조합원(주민) 1인당 연간 배당금은 2015년 한때 700만 원까지 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부대사업이 하향세를 타면서 올해 들어 6월 말 현재 수익금은 1억5,000여만 원에 그쳤다. 주민들은 "외부 장례용품 업자들이 영락공원 안팎에서 노골적으로 영업을 한 탓"이라고 했다. 실제 전체 수익금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유골함 판매 실적을 보면 매출 하락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제2추모관에 안치된 유골함 4,350기 중 조합 측이 판매한 유골함은 1,112기로 25%에 불과했다. 올해(8월 말 기준)도 안치된 유골함 2,507기 중 334기(13%)만 조합 측에서 판 것이다. 조합 측은 "장례용품 업자들이 장의 차량 운전기사 등에게 소개비를 줘가면서 유족들을 상대로 장례용품 판매 영업을 하고 있다"며 "이 소개비는 고스란히 유족들에게 떠넘겨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조합 측은 "A사 등이 조합의 영업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반발하지만 A사 등의 '영락공원 밖' 영업을 제재할 뾰족한 방법도 없어 속을 끓이고 있다. A사가 영락공원을 이용하는 유족들을 상대로 영업을 못 하게 하는 독점 운영권이 조합 측에 주어진 게 아니다는 2017년 법원 판단 때문이다. 지난 4월엔 영락공원에서 영업을 하던 외부 업자와 이를 말리던 조합 측 납품 업체 관계자 간 폭력 사건이 터지기도 했지만 외부 업자의 영락공원 내 영업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락공원을 위탁 관리하는 광주시도시공사가 외부 업자에게 제례 관리 업무까지 맡겨 주민들 화를 돋우고 있다. 실제 광주시도시공사는 지난 6월부터 제2추모관 자체 제례시스템 관리 프로그램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A사에 넘겨주고 A사가 판매한 명패에 담긴 고인(故人) 생몰 일자와 영정 사진, 유족 명단, 명패 추모 문구 등 관련 정보를 등록하게 했다. 주민들은 "도시공사가 시설 임대료(연 2,400여만 원)까지 내는 조합의 영업은 방해하고 외부 업자 영업을 부추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광주도시공사는 이에 대해 "외부 업자가 고인 관련 정보를 등록하지 못 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