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왕 루이 13세는 14세기 100년전쟁 중 수도 방어 요새로 건축된 바스티유(Bastille de Paris)를 정적을 가두는 정치범 감옥으로 활용했다. 부르봉 왕조의 기틀을 다져 프랑스를 유럽 최강국으로 우뚝 서게 한 재상 리슐리외(1858~1642)가 감옥 개조 및 운영의 책임자였다.
1698년 검은 벨벳 안면 마스크로 얼굴 전체를 가린 죄수 한 명이 루이 14세의 명에 의해 바스티유에 수감됐다. 1669년 체포된 직후부터 마스크를 쓴 채 프랑스령 지중해의 여러 섬에서 격리 수용됐던 자였다. 마스크를 벗기려 하는 자는 누구든 즉시 처형하며, 죄수가 자신의 신분을 발설하거나 마스크를 벗을 경우에도 현장의 간수들까지 전원 처형하라는 왕명이 함께 하달됐다. 그렇게 죄수는 이름도 얼굴도 없이 만 34년을 갇혀 지내다 1703년 11월 19일 옥사했고, 시신은 '외스타슈 도제(Eustache Dauger)'라는 이름으로 매장됐다.
그의 미스터리는 당대와 이후 수많은 이들의 억측과 사학자들의 해석을 낳았고,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달타냥 3부작' 중 3부 '철가면'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뒤마는 소설에서 철가면을 권력 투쟁에서 패한 루이14세의 쌍둥이 동생이거나 이복형제이리라 암시했다. 계몽철학자 볼테르는 어린 루이14세의 섭정으로서 전제적 권력을 행사하던 재상 쥘 마자랭(1602~1661)이 국왕의 어머니인 루이13세의 왕비 안 도트리슈와 낳은 사생아였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가면 죄수의 비밀은 루이15, 16세의 왕명에 의한 조사로도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2016년 캘리포니아대 사학자 폴 소니노(Paul Sonnino)는 역사 추리 '철가면의 남자를 찾아서'란 책에서 마자랭의 핵심 측근 집사 이름이 '도제'였다고 썼다. 명재상인 동시에 왕가의 재산 상당량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진 마자랭이 사후 자신의 비밀을 덮기 위해 도제를 그렇게 격리하도록 조치했다는 주장이었다. 정설은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