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유독 일본에서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급격하게 줄어든 이유로 일본 연구팀은 바이러스가 유전자 변화로 자멸했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이를 옹호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사람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우려하는 전문가도 많아 혼돈을 주고 있다.
‘자멸설’을 처음 제기한 쪽은 일본 국립유전학연구소와 니가타대 연구팀으로, 지난달 말 일본유전학회에서 내용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바이러스의 게놈(유전정보) 복제 시 발생하는 변이를 원상복구할 때 필요한 효소 ‘nsp14’에 주목했다. 바이러스는 증식할 때 게놈을 복제하지만 때때로 실수가 일어나 변이가 생긴다. 이 변이가 쌓이면 결국 증식할 수 없게 되지만, nsp14가 복구하면 가능하다. 하지만 ‘5차 대유행’ 당시 감염의 대규모 확산과 함께 nsp14의 유전자가 변화하면서 게놈 복제가 불가능한 바이러스가 확산돼, 결국 바이러스가 증식하지 못하고 사멸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국립감염증연구소가 공개한 일본 내에서 검출된 코로나19 게놈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5차 대유행 당시 nsp14 관련 유전자가 변화한 바이러스의 비율이 감염 확산과 동시에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하루 감염자 수가 최고 2만5,000명이나 나오며 감염 확산이 정점에 이른 8월 하순 직전부터 수습되기까지 사이에는 검출된 바이러스의 거의 전부가 nsp14 관련 유전자가 변화된 타입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간의 체내에 있는 ‘APOBEC’라는 효소가 nsp14에 변화를 일으켰을 것으로 추측하고, 동아시아나 오세아니아에서 이 효소의 작용이 특히 활발한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일본에서만 델타 변이가 자멸했다’는 깜짝 놀랄 만한 가설은 방송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이달 초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전문가 인터뷰에서 구로키 도시오 도쿄대 명예교수와 마쓰우라 요시하루 오사카대 교수(일본 바이러스학회 이사장)도 자멸설에 힘을 실었다.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독감도 이렇다 할 백신도 없었는데 갑자기 소멸했다’는 사실도 보도됐다.
하지만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소속 면역학자인 오노 마사히로씨는 이 같은 가설을 전파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반박한다. 그는 자멸설이 “APOBEC, nsp14 등 알파벳이 사용돼 마치 전문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 자기모순적”이라며 “이런 근거 박약한 언설은 코로나 대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사회에 유해하다”고 비판했다. 그가 말하는 ‘자기모순’이란 “증식하지 못하게 된 바이러스의 감염이 확산됐다”는 부분이다. 효소의 유전적 변화 등에 의해 증식하지 못한다면 감염력이 크게 떨어진 것인데 이런 바이러스가 감염력이 매우 강한 델타 바이러스보다 더 많이 확산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대신 감염 급감의 원인으로 백신 접종과 동시에 대규모 감염이 일어난 것을 꼽았다. 코로나19에 면역이 가장 강력해지는 것은 백신접종을 한 사람이 코로나에 감염된 직후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일본은 유럽과 달리 여름에야 30~50대 접종이 이뤄졌는데 이와 동시에 5차 대유행이 확산되면서 △백신 접종 △감염 △백신 접종 후 감염 등 세 가지 경로로 항체를 가진 사람이 많아졌고, 결국 사람 간 감염의 고리가 끊어졌다는 설이다.
코로나19 감염이 급감한 원인에 대해 분석이 다르면 ‘6차 대유행’ 전망과 대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자멸설을 옹호한 구로키 명예교수는 “만약 이후 새로운 감염이 일어난다면 델타 변이가 아닌 다른 변이에 의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새로운 변이가 들어와 유행하지 않는 이상 현 상태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반면 백신 접종과 5차 유행의 합작으로 항체 보유자가 크게 늘어난 게 원인이라면, 앞으로 체내 항체가 줄어들면서 다시 6차 대유행이 올 수 있으니 빠른 3차 접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