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세계에는 모순과 역설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미술사를 장식하는 명작일수록 모순과 역설의 메커니즘은 강하게 나타난다. 앙드레 부르통이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 칭송했던 마르셀 뒤샹을 생각해 보면 쉽게 납득이 갈 것이다. 뒤샹은 1917년 남성용 소변기 하나를 뉴욕의 독립미술가협회 전시회에 출품했다. 물론 이 물건은 전시를 거부당했으며 방치된 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이 변기 사건은 20세기 미술의 문을 새롭게 여는 시발점이 되었다. 뒤샹의 소변기는→다다→네오다다→누보레알리즘→아르테 포베라→대지미술에 이르는 오브제 미술의 계보를 만들었다. 뒤샹이 저지른 반예술적 태도는 새로운 예술을 태동하고 증식하는 미학 원리가 되었다. 죽음으로써 생명을 얻은 어긋난 이치가 예술에 나타난 사례다.
혁명의 예술로 불리는 러시아 아방가르드에도 모순과 역설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러시아 혁명기에 탄생한 미술 운동이었으니 그 안에 숨막히는 긴장과 변화가 없을 리 없다. 카지미르 말레비치가 그 대열의 중심에 있었다. 러시아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말레비치는 1910년대의 격변하는 시대상에 부응하며 러시아 농민과 노동의 세계에 대해 민족주의적 해석을 시도한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후 그림 속 농민들은 단순하게 그려지고 해체되더니 급기야 검정사각형의 텅 빈 세계로 사라졌다. 이른바 전통적 개념으로서의 예술이 종식된 것이다. 그러나 강화된 소비에트 정권은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추상주의 그룹을 탄압했다. 동료였던 바실리 칸딘스키와 앙투안 페브스너는 서유럽으로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말레비치는 조국 러시아를 떠나지 않았다. 모스크바의 미술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쳤고 1923년에는 그의 '비대상적 세계'가 독일 바우하우스에 의해 출간되었다. 하지만 1924년 집권한 이후 공포정치를 통해 부상한 스탈린 정권은 그를 놔두지 않았다. 미학적 급진주의를 표방한 아방가르드 작품은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1930년 고향 키예프에서 회고전이 열렸으나 전시는 바로 폐쇄되었고 새로운 미술의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체포되어 두 달의 형을 살았다. 이후 그는 타의에 의해 탐구를 중단하고 구상화와 초상화 그리고 풍경화로 되돌아가 1935년 암으로 죽음을 맞을 때까지 조용한 삶을 보낸다.
말레비치가 사망한 이후, 미국에서는 회화의 순수성을 탐구하는 일련의 추상화가들이 등장했다. 그중 기하학적 추상의 중심에 선 작가들이 애드 라인하르트와 바넷 뉴먼 같은 이들이었다. 라인하르트는 1936년 결성된 ‘미국추상화가협회’의 창립멤버로 가입하면서 아직도 ‘모더니즘의 변방’으로 남아 있던 미국 화단에 추상미술을 보급하기 위한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 바우하우스의 영향 아래 1950년대 초반 이후 그는 기하학적인 단색 평면 회화작업 연작에 몰두하게 되었다. 한편 뉴먼은 1960년대 초반 미국 화단에 등장한 미니멀 아트의 주역으로 주제도 없고 형상도 없으며 움직임도 없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극단적으로 단순화된 색채와 뉴먼의 기하학적 작품은 신비와 숭고의 세계를 품은 것으로 평가되면서 미국 화단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전후 '에콜 드 뉴욕' 화파의 대표적 경향이 된 추상표현주의와 미니멀 아트는 “예술은 자연에서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상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들 화파의 목표는 ‘예술로서 예술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미적 태도는 말레비치가 절대와 우주의 무한성에 대한 체험을 표현하기 위해 형상과 색을 비롯한 모든 형식을 무효화하려 했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러시아의 말레비치는 전후 미국 화단에서 부활했다. 말레비치가 도달한 예술의 죽음은 밀알이 되어 소생했고 미국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국제 미술계를 풍요롭게 했다. 물론 ‘절대주의’와 ‘미니멀리즘’ 사이에는 문화 사회학적 차이가 존재한다. 미니멀리스트들은 미술과 생활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며 작품에서 주관적 의미는 배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말레비치는 정치 혁명의 지지자로서 현실에 대한 적극적 참여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는 죽음으로써 새로운 생명을 탄생케 하는 예술세계의 모순과 역설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