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A씨는 상사에게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예정이니 다음 날 휴가를 써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개인 연차를 쓰라"는 말이 돌아왔다. 아까워도 후유증이 걱정돼 연차를 쓸 계획이었지만, A씨는 결국 쉬지 못했다. 그는 "상사가 접종 다음 날까지 보고서를 만들라고 했다"며 "아픈 몸으로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B씨는 연차를 내는 덴 성공했다. 하지만 상사의 업무 연락을 온종일 받아야 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한 B씨가 다음 날 출근하자 상사의 태도는 노골적으로 바뀌었다. B씨는 "복귀하자마자 팀원들이 있는 데서 소리를 치고 처리할 수 없는 일을 맡기면서 괴롭히고 있다"고 토로했다.
우리 정부는 기업들에 백신 휴가를 권장했지만, 강제가 아니라 '권고'다. 공공기관, 대기업 직원들에게 주어진 백신 휴가는 먼 나라 얘기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이유다. 접종 후 개인 연차를 써야 하거나 A씨처럼 이마저도 눈치가 보여 쉬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미접종자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 그야말로 '백신 갑질'이다.
14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7~11월 접수된 백신 갑질 제보는 총 80건이다. 대부분 중소기업 직장인들의 하소연이었다. 접종 다음 날 출근했다가 근육통이 심하고 열이 올라 조퇴를 했다고 호통을 듣고, 연차도 못 쓰게 해 접종을 미룬 경우도 있었다.
C씨는 백신을 안 맞았다는 이유로 요즘 회사에서 '투명인간'이 됐다. 그는 "예전에 백신 부작용을 심하게 겪어서 망설여지는 건데, 무조건 비난하고 밥도 같이 먹지 못하게 해 정신과를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기저질환이 있어 접종하지 않은 D씨는 징계나 해고, 전보 발령 등 불이익이 있을 거라는 협박까지 들어야 했다.
연차는 근로기준법상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없는 한 근로자가 원하는 시기에 보장하도록 돼 있지만, 직장갑질119 설문조사 결과 여전히 23.4%가 자유롭게 연차나 병가를 사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비정규직(30.0%)과 서비스직(30.0%), 5인 미만(35.3%), 저임금노동자(33.1%) 등에서 높게 나타났다.
미국, 캐나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접종자는 모두 유급으로 쉬는 '백신 휴가제'를 도입했다. 기업 재량에 맡겨 취약층일수록 혜택에서 배제되는 우리와 다른 점이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국가가 맞으라고 해서 맞았는데 누군 2, 3일 쉬고, 누군 아파도 일해야 하는 차별을 만든 건 정부"라며 "백신 휴가 지원비 등으로 유급휴가를 지원했다면 갑질이나 차별은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