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을 노동부 장관으로" 외쳤던 이재명, '노동 유연' 말하는 배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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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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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되면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사면해 노동부 장관에 발탁하겠다." (2017년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

"민주노총이든 이재명의 가족이든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난 10일 관훈토론회)

다른 결의 발언 같지만 모두 '소년공 출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한 말이다. 4년 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 되겠다"며 민주노총 등에 러브콜을 보낸 것과 최근의 이 후보의 발언은 확연히 다르다. 지난 10일 관훈토론회에선 진보 진영의 금기어로 통하는 '노동의 유연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노조 요구에 "즉흥적으로 말하는 건 무책임"

이 후보는 14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소 방문에 앞서 '대우조선해양 매각 원점 재검토'를 요구하는 노조와 시민사회단체와의 간담회에서 "진행 중인 합병 절차를 어떻게 하겠다고 즉흥적으로 말하는 건 매우 무책임하다"며 "사측 입장도 듣고, 정부 입장, 국회 상임위와 당 차원의 입장도 다 들은 뒤 세 가지 단계로 고민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인수합병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불이익 문제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강조하면서도 "(2019년 매각 결정이) 원천적으로 잘못됐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강성 노조에 대한 비판도 스스럼없이 밝히고 있다. 지난 10일 관훈토론회에서 노동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을 강조하며 "안온한 환경을 누리는 일부 소위 강성노조를 설득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같은 날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한 자리에선 '친기업' 이미지 부각에 힘썼다. "노동존중과 친기업적 정치·행정은 양립될 수 없는 개념이 아니라 공존·상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다. 또 "친기업적 광역단체장이 누구인지 조사를 했는데 (내가) 압도적 1등을 했다"며 네거티브식 규제로의 전환 등 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이념보다 실리 중시... "전환적 성장 핵심은 기업"

이러한 변화에 이 후보 측은 4년 전과 상황이 크게 변했다고 밝히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제 회복과 성장이 대선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업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이 후보 측 관계자는 "전환적 공정 성장을 제1공약으로 내세웠는데, 성장의 핵심 주체는 기업 아닌가"라며 "국가 전체 생산력을 높여야 기본소득과 기본주택도 가능한 만큼 실용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이념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이 후보의 신념과도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민주당 주류인 '86세대'와 다소 다른 길을 걸어왔다.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깊이 관여하지 않은 만큼 상대적으로 노동계에 부채의식이 크지 않다는 점이 이러한 태도의 배경요인이라는 것이다. 다음 정부에서 전환적 공정 성장을 주도하는 '경제 리더'로 거듭나기 위해선 기존의 '반기업'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노동정책 조만간 발표... 현 정부와도 차별화?

이 후보가 그렇다고 노동계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8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비공개 만찬을 했고, 조만간 한국노총을 방문해 노동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생산성을 높여 임금 삭감이 없는 근로시간 조정을 캠프에서 검토하고 있다"며 "경기지사 시절에 실시했던 '비정규직 공정수당' 등을 참고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노동'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 후보가 최저임금 대폭 인상 등의 요구를 적극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선대위 관계자는 "현 정부 기조와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당 차원에서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재평가를 통해 수정·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과제로 내세울 것"이라며 일부 차별화를 예고했다.

강진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