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사건 해결부터 코로나 검사까지...PCR의 마법

입력
2021.11.16 05:30
15면
유전물질 복제해 양 증폭하는 '중합효소연쇄반응'
밤 10시 코로나 검사해도 다음날 새벽 결과 뚝딱

편집자주

일상 속 생명과학 이야기가 격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여행하는 과학쌤’이란 필명으로 활동 중인 이은경 고양일고 교사가 쉽고 재미있게 전해드립니다.

전 국민이 초자연적인 존재를 부르며 기도하다 보니 한파가 찾아온다는 우스갯소리의 주인공,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 팬데믹이 잠잠해지지 않으니 추운 날씨 속에서 고생할 수험생과 관계자들의 건강이 더욱 염려된다. 그래도 코로나 예방을 위한 준수사항이 작년보다 매끄럽게 정비된 것은 다행이다. 식사 시간에만 설치할 접이식 칸막이가 마련됐고, 의심 증상이 있는 수험생은 수능 전날 밤 10시까지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은 후 시험실 재배치가 가능하다.

PCR는 중합효소연쇄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의 약자로, 표적이 되는 유전물질을 연쇄적으로 복제해 그 양을 증폭하는 기술이다. 세포에 들어 있는 유전물질의 양은 매우 작으며 그중 우리가 찾고자 하는 특정 유전자는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PCR 기술 없이 생명체의 작은 흔적을 분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에는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미량의 DNA를 분석하지 못했지만 PCR를 이용해 증거물에 남아 있던 DNA를 증폭하는 방법으로 장기 미제 사건의 진범을 찾기도 했다. 코와 입 안에서 소량의 세포를 채취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확인하는 것 또한 바이러스의 특정 유전자를 증폭하는 PCR 기술 덕분이다.

사람의 유전물질인 DNA는 두 가닥이 긴 사다리처럼 결합된 형태인데 DNA가 복제될 때는 지퍼가 열리듯 두 가닥이 분리된다. 분리된 한쪽 가닥에 시발체(primer)가 결합하면 DNA 중합효소가 이를 인식해 반대쪽에 해당하는 가닥을 새롭게 합성하는 방식으로 DNA가 복제된다. DNA 복제 과정을 빠르게 반복해 그 양을 늘리는 것이 PCR의 기본 원리다. DNA에 열을 가해 이중가닥을 인위적으로 분리한 후 다시 온도를 낮춰 시발체를 결합시키고 새로운 DNA 가닥을 중합하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단순해 보이는 반응이지만 DNA의 두 가닥을 분리하기 위해 열을 가하는 단계에서 중합효소가 변성되어 제 기능을 잃어버리는 문제가 있었다. 또 새로운 DNA 가닥을 중합하기 위해 온도를 낮추면 기껏 분리했던 처음의 두 가닥이 다시 결합해버렸다. 이를 해결한 것은 온천에 사는 세균의 DNA 중합효소다. 이 중합효소는 열을 가해도 기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 연속적으로 중합 반응을 진행해 DNA를 빠르게 증폭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체는 RNA이기 때문에 감염 여부를 확인하려면 RNA를 주형으로 DNA를 합성하는 역전사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가지는 특징적인 RNA를 역전사시켜 이중가닥 DNA를 만든 후 해당 DNA 서열을 복제하기 위한 시발체를 이용해 PCR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PCR 결과 유의미한 양으로 증폭된 DNA가 없다면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판정이 나온다. 최근에는 PCR 과정 중 증폭된 이중가닥 DNA에 실시간으로 형광물질을 결합시킨 후 형광 감도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더욱 빠르게 검사 결과를 얻고 있다.

실시간 PCR 덕분에 밤 10시에 검사를 받아도 아침이 오기 전에 결과를 받을 수 있으니 의심 증상이 나타났다면 수능 전날이라도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 좋겠다. 방역 요원과 감독관을 포함한 모든 수능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전국의 수험생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기량을 발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