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 일 정의당 청소년위원회는 당 차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정의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선후보 경선투표 당일, 당규를 이유로 "예비당원의 투표 값이 당락에 영향을 줄 경우 이를 제외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이정찬 경기도당 부위원장은 "투표권을 줬다 뺏는 것이 당황스러웠고 당원으로서 한계와 박탈감을 느꼈다"며 "정의당이 청소년 참정권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의구심이 드는 사건"이라고 반발했다.
정의당은 2015년 청소년에게 정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며 예비당원 제도를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예비당원은 현행법상 당원 가입 자격이 없는 청소년들이 정당 활동에 일부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인데, 이번 사례는 진보정당에서조차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막는 벽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19년 12월 공직선거법 개정을 통해 투표 연령은 만 19 세에서 만 18세로 낮춰졌다. 이로써 만 18세 유권자는 지난해 4월 21대 총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다만 정당법은 당원의 조건으로 '국회의원 선거권이 있는 자'로 규정하고 있어, 정당 가입 연령도 만 18세 이상이어야 한다.
이에 '국회의원 선거권이 없는 자'가 당원에 가입한다고 해서 처벌하는 조항이 없는 만큼 정당이 자체 기준을 정해 10대 청소년들의 정당 가입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해외에선 정당이 자체적으로 당원 가입 연령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의 정당 가입을 요구하는 측은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산 교육'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제도권 정치에 젊은 유권자의 목소리 반영은 물론 청소년 정책 수립에도 정책 소비자인 청소년의 입장을 충실히 반영하는 통로를 제공할 수 있다. 선거 공천 때마다 반복되는 정당 지도부 중심의 '인위적인 물갈이'가 없어도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가 이뤄지도록 하는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청소년의 정당 가입이 허용된 해외에선 '30대 정상'을 배출하기도 한다.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전 총리,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17세부터 정당 활동에 참여해 정치 경험을 쌓아왔다.
우리나라에선 1020세대는 그간 '정치 무관심층'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국정교과서 반대집회, 세월호 추모집회 등에 10대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정적인 계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었다. 촛불시위 등에 참여해 정권 교체를 이룬 '정치적 효능감'을 몸에 익힌 10대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고등학교 2학년 신정민씨(18)는 "청와대 국민청원 등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유하며 친구들끼리 정치 참여를 독려하기도 한다"며 "청소년을 공부할 나이로만 보는 편견이 정치 참여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임준구씨(17)도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부족하다"며 "참여 의사가 있어도 만 18세 미만 청소년들은 선거권이 없고 영향력을 갖기도 힘들다"고 했다.
실제 탄핵 등을 경험한 10대들은 내년 대선에서 '캐스팅보터'로 주목받고 있는 MZ세대(2030세대)에 일부 편입됐고, 여야 대선후보들은 이들의 표심 잡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국회의원과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자는 논의와 대통령 피선거권도 만 40세 이하로 낮추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청소년 참정권 확대 요구는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강민정(열린민주당), 조정훈(시대전환), 장경태(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투표권 연령 하향에 맞춰 미래유권자에게 정치에 대한 관심 제고와 교육적 목적으로 선거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정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유럽의 청년 정치 지도자와 젊은 국가수반들은 모두 청소년 시절부터 정당 활동과 활발한 정치 참여를 통해 성장한 젊지만 완숙하고 준비된 정치인들이었다"며 법안 개정 배경을 밝혔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8월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조항을 삭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정의당은 이에 앞서 지난해 1월 투표권이 없는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들의 정당 가입을 제한한 정당법에 대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교육감 선거권과 정당 가입 연령을 하향 조정하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당시 청소년이 교육서비스의 이해 당사자임에도 이들의 목소리가 교육감 선출에 반영되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다. 그러나 법안 우선순위에 밀렸고 회기 만료로 빛을 보지 못했다.
이은선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은 "선거에서 투표할 수 없더라도 적어도 당내 경선 등에 참여함으로써 청소년의 입장을 반영한 후보들이 당선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청소년 보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청소년 정책의 방향도 변화할 수 있다"고 했다.
입법 시도가 결실을 맺지 못하는 배경엔 정당 가입 연령 하향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적지 않아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교실 내 정치장화와 학생의 학습권 침해 등의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창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외국은 15세부터 정당 가입을 허용한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다소 이른 것 같다"며 "정당도 준비가 안 됐고, 청소년을 민주적 시민으로 바라보는 인식도 부족하다"고 했다. 정당법 개정에 앞서 교육 현장에서 정치와 선거에 대한 교육이 우선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의 정당 가입이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교실의 정치화 등의 우려에 대한 명확한 실증적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