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덮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야심작 사회복지예산안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예산안이 처리돼 1조8,500억 달러(약 2,200조 원) 규모의 돈이 또 풀릴 경우 물가 급등세에 불을 붙여 경기 회복을 둔화시킬 것이라는 게 공화당과 민주당 중도파의 반대 논리다. 미국 추수감사절(25일) 연휴 이전에 예산안을 통과시키려던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백악관이 ‘미국 재건 계획(Build Back Better)’으로 부르는 사회복지예산안 처리 시도가 인플레이션 때문에 주춤거리고 있다.
백악관과 민주당은 지난 5일 1조2,000억 달러(약 1,400조 원)에 달하는 미국 사상 최대 규모 사회기반시설(인프라)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여세를 몰아 다음 주 하원, 상원 순서로 사회복지예산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휘발유, 식품, 차량 등 미국인들의 생활 필수 품목을 중심으로 물가가 급등하면서 예산안 처리도 유탄을 맞았다. 전날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 폭이 3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나오는 등 인플레이션 압력이 강해진 상태다. 여기에 경기부양안 성격의 예산안 통과로 시중에 돈이 늘어나면 금융시장도 흔들릴 수밖에 없어서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총 3조 달러 규모 예산안이 통과되면 2022년 초부터 2024년 말까지 3년간 물가상승률을 0.3%포인트 더 끌어올릴 것으로 추산했다.
호기를 잡은 공화당은 각을 세우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끔찍한 경제정책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커진 것”(케빈 크레이머 상원의원)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마이크 버그 전국공화당의회위원회 대변인도 WSJ에 “과도한 지출과 국가 공급망 관리 부실로 이번 인플레이션 위기를 초래한 데 대해 유권자들은 민주당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사회복지예산 통과를 가로막아 온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도 “(지역구인) 웨스트버지니아 사람들은 증가하는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미국이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계속 쌓아 올릴 수는 없다”라는 트윗을 올리며 공화당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백악관은 지지 여론을 바탕으로 예산안 통과를 밀어붙인다는 계획이다. 10일 공개된 미 몬머스대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중 65%가 인프라 예산안을 지지하고, 62%는 민주당의 지출 계획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42%인 것에 비하면 예산안 지지세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백악관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17명의 사회복지예산 지지 성명을 중심으로 ‘예산안 통과가 인플레이션을 초래한다’는 비판에 맞서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투입되는 재정은 세금 인상과 세수 절감으로 상쇄될 것이라는 논리도 민주당 쪽에서 나오고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로렌스 서머스는 “10년에 걸쳐 지출이 이뤄지고 세금 인상으로 (물가 상승이) 상쇄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삭감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WSJ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