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에 다시, 가을이 왔다

입력
2021.11.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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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告)하는 제례를 마쳤으니 황제의 자리에 오르소서."

1897년 10월 12일 자시(子時), 아관파천에서 돌아온 고종이 소공동에 새로 지은 환구단에서 제를 올린 뒤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왕비가 살해된 경복궁을 나와 경운궁을 거처로 삼았던 고종은 날이 밝기 무섭게 '대한(大韓)'이란 새로운 국호를 선포했다. '대한제국'의 탄생이었다. '조선 사기에 몇 만 년을 지내더라도 제일 빛나고 영화로운 날이 될지라'고 '독립신문' 사설이 감격하던 그날은 사실 멀고 긴 가시밭길의 첫걸음이었다.

떠밀리듯 황제의 자리에 올라 새 국가를 선포한 고종은 자신이 머물게 될 황궁을 야심차게 증축했다. 건축가 아파나시 사바틴에게 왕궁 개조업무를 맡겨 구성헌과 정관헌, 돈덕전을 차례로 지었다. 존 하딩의 설계 아래 첫 삽을 뜬 석조전은 고종이 꿈꾸는 견실한 근대국가의 상징이었다. 그의 구상은 그러나 중명전에서 체결된 을사늑약으로 처참하게 깨졌다. 일본은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고종의 왕위마저 박탈했다. 순종은 창덕궁을 정궁으로 삼아 떠나고 고종 혼자 '덕수궁'으로 현판을 바꾼 그곳에 머물며 석조전 완공을 지켜봐야 했다.

한동안 나는 덕수궁에 갈 때마다 강박적으로 굴었다. 이곳에 깃든 아픈 역사를 기억해 달라고 간청하듯, 함께 간 이들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해댄 것이다.

어느 해 봄이었다. 사촌 언니의 결혼으로 맺어진 한 무리의 미국인 가족들이 서울에 왔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까지 상경해 도심 레지던스 호텔에 머물며 함께 여행하던 때, 덕수궁은 하필 진달래와 개나리, 벚꽃, 싸리꽃, 양매화가 한꺼번에 피어 비현실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Amazing!" "So beautiful!"을 외쳐대는 백인 여행자들에게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우리의 역사를 조곤조곤 들려주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안쓰럽게도 솟구치는 애국심을 감당하기에는 나의 영어 구사력이 턱없이 짧았으니, 나는 상냥한 눈웃음을 날리며 그들의 행복한 한때를 사진으로 담는 데 열중했다.

여러 달이 지났다. 서울 여행 때 일행의 후미를 자상하게 지켜주던 사촌 형부가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는 말이 들렸다. 손쓸 도리 없게 된 남편의 마지막을 극진히 간호해온 언니로부터 소식이 온 건 이듬해 늦가을이었다. 형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고 말하던 언니가 대뜸 "고마워"라고 했다. 형부는, 자신이 암 판정을 받기 전 온 가족이 서울 여행을 다녀온 걸 하나님이 준 마지막 선물로 여겼다고 했다. 특별히 활짝 핀 꽃들로 둘러싸인 덕수궁 연못가에서 일행이 파안대소하는 사진을 눈감기 전까지 보고 또 보며 미소 지었다고 말이다. 그 저녁 단풍잎이 꽃비처럼 쏟아지는 덕수궁 뒤뜰을 혼자 걷다 생각했다. 중요한 건 지나간 역사만이 아니라고, 지금 이곳의 현실 역시 그 못지않게 소중한 기억의 자원이라고.

다시 덕수궁에 가을이 왔다. 짙게 물든 홍단풍 아래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동행은 이제 막 17개월 된 아기와 그 아이의 부모였다. 궁궐 안은 날리는 낙엽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그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로 가득했다. 나는 살갗에 박힐 듯 투명한 아이의 웃음소리와 지금 이 순간의 눈부신 광경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번갈아 쥐며 동영상에 담았다. 그렇게 또 다른 기억이 덕수궁에 보태지고 있었다.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