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수학, KTX 아닌 자전거 타듯 공부해야죠"

입력
2021.11.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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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의 수학 학부모의 계획' 펴낸 중등 수학 교사 김수희씨

"고3 담임을 하면서, 수학 성적이 안 나와 꿈을 접는 아이들을 보고 안타까움이 컸어요. 어렸을 때부터 수학에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데 아이들의 수학 실력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왜 더 떨어졌을까, 의문을 갖게 됐죠."

20년 경력의 중등 수학 교사 김수희(43)씨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에게 직접 수학을 가르치면서 이 의문이 풀렸다.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가 초등 수학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하지 않고 '과도한 선행 학습'과 '양치기(과도한 문제 풀이)'에 몰두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초등 수학 공부 법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최근 이를 담은 책 '초등생의 수학 학부모의 계획'을 펴냈다. 그가 3년 동안 초등 수학을 연구해 초등학교 4학년 딸과 실천하고 있는 방법이다.

지난 8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김씨는 "너도나도 선행을 하며 진도에 연연하니 실력도 깊이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실태를 진단했다. 요즘 아이들은 7세 때 연산 문제집을 풀고, 초등 저학년은 사고력 학원을 다니고, 5학년이 끝나면 중학교 수학을 들어가고, 중학교 때 고등 수학을 끝내는 게 공식이 됐다.

그는 "많은 학부모들이 수학 '진도'를 '성취도'로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초등 수학 실력, 성취도를 높이고 싶다면 "선행 대신 '교과서 복습'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딸 역시 초등학교 입학식부터 지금까지 수학 교과서 복습이란 원칙을 지키고 있다. "교과서가 약해 개념서가 별도로 필요한 중등 수학과 달리, 초등학교 교과서는 시중 어느 문제집보다 개념이 체계적으로 집대성돼 있습니다. 수학이라는 과목 특성상 배운 내용을 정리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해요."

초등 수학에서 구멍이 나면, 중학교에 올라가 이를 메우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중학교 1학년 '수포자(수학포기자)'의 대다수가 초등 수학에서 분수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다. 그는 "분수를 '전체에 대한 부분을 나타내는 수'에서 그치지 않고 나눗셈의 몫, 비와 비율로서의 다양한 개념을 이해하고 연산을 할 수 있어야 정수와 유리수, 문자와 식, 1차 방정식 등 중학교 교육과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선행에 대해선 "초등학생 때의 적정 선행은 방학 기간에 다음 한 학기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들의 수학 능력은 어느 정도면 될까. △1~100의 숫자를 알고 자유자재로 쓸 것 △십의 자리와 일의 자리의 차이를, 즉 십진법의 원리를 알고 있을 것 △일상 생활에서 가르기와 모으기를 할 수 있을 것을 주문했다.

특히 초등학생 때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수학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해 주면 좋다. 아이가 100개를 목표로 줄넘기를 하다 30개를 하고 걸렸을 때, '몇 개 남았을까?'라고 물어보는 식이다. 구구단을 외우기 전에도 그 의미를 설명해주는 게 중요하다. "7 곱하기 8이 56이라는 것은 알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전혀 모르면, 그건 수학 시간이 아니라 음악 시간에 배워야 하는 지식이죠. 7을 8번 더해 보도록 하고 곱하기 기호의 위대함을 알려줘서 아이가 수학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저자가 책의 서두에 적은 목표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수능 수학 1등급 맞기'다. 수학 때문에 진로를 수정하는 학생이 없기를 바라는 현직 교사의 마음이다. "서울에서 여수까지 간다고 했을 때, '네가 여기까지 온 과정에 대해 설명해 보라'는 게 수능 수학이거든요. KTX를 타면 굉장히 빠르고 효율적으로 가겠지만 그만큼 본 게 없어요. 그런데 자전거를 타면 어떤 경로로 갈지 고민하며 가겠죠. 조금 늦게 가더라도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수학 공부를 하는 게 초등학생 때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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