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외교관이 운전 중 택시를 들이받은 뒤 아무런 조처 없이 현장을 떠나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경찰은 가해자가 면책특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점을 감안, 주한 미국대사관에 수사 협조 요청 공문을 보내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 35분쯤 서울 용산구 남산 3호터널 인근에서 주한 미국 외교관(2등 서기관)이 다른 3명을 태우고 운전하던 차량이 차선 변경을 하던 도중 택시 후면 범퍼를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피해를 입은 40대 택시 기사는 곧장 가해 차량을 쫓아가 운전자인 외교관을 향해 말을 걸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은 채 용산 미군기지 3번 게이트 인근까지 계속 주행했다. 피해자도 이곳까지 따라가 출입을 통제하는 미군 관계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피해자로부터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외교관 차량 번호판을 확인하고 신분 확인을 하려고 했지만, 탑승자들은 창문도 열지 않고 음주 측정을 비롯한 모든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이들은 결국 통제소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관사가 있는 미군기지 영내로 진입했고, 경찰은 이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어 제지하지 못했다.
사고 당일 피해자 조사를 마친 경찰은 이날 오전 가해 운전자가 외교관이라는 사실을 공식 확인하고 주한 미국 대사관과 외교부를 통해 경찰 조사 협조 및 면책특권 행사 여부를 묻는 공문을 보냈다. 경찰은 해당 외교관이 조사에 응할 경우 사고 후 아무런 조처 없이 현장을 떠난 이유 등을 조사해 고의성 여부를 파악할 예정이다.
이날 주한 미국 대사관 측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언론 보도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해당 사건과 관련해 한국 측 관할 법 집행당국에서 철저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가 뺑소니인지를 두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