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한 번쯤은 접했을 그림이 있다. 긴 이야기를 담은 것도 아니고 가로·세로 11㎝ 작은 냅킨에 그려진 동물 그림 한 컷이지만 많은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며 화제가 됐다. 냅킨에 동물 이야기를 담아낸 이는 팔로어가 1만3,000여 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두부의 동물화실'을 운영하는 작가 박현주(35)씨다. 박씨는 최근 냅킨에 그린 작품과 글을 모아 '동물에 대한 예의가 필요해'(책공장 더불어)라는 책을 출간했다.
박씨는 11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동네 고양이가 학대를 당해 죽고, 보호소에 들어온 유기동물이 안락사를 당하고, 구제역과 조류독감(AI)으로 소와 돼지, 닭이 살처분을 당하는 등 이름 없는 많은 동물이 죽고 있다"며 "그림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들의 명복을 비는 마음을 담았다"고 밝혔다.
대학 때 미술을 전공한 박씨는 동네 고양이 사진을 찍어 책으로 내는 등 동물을 작품으로 표현해왔다. 동물 문제에 관심을 갖던 중 동물보호단체 팅커벨프로젝트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고, 2014년부터 5년 동안 입양 상담팀에서 활동했다. 그는 동물단체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냅킨을 이용한 작품 활동을 이어 갔다. 지금까지 그가 냅킨에 그린 작품 수는 600여 개에 달한다. 박씨는 "페이스북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페이지인 데다 당시 인기가 있었다"라며 "온라인에 그림을 올려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 '두부의 동물화실'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SNS를 타고 입소문이 나면서 동물권행동단체 카라, 출판사 등과 손잡고 잇따라 전시를 열었다.
박씨의 그림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소외된 동물의 아픔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유기동물뿐 아니라 실험동물, 농장동물 등과 관련된 시사적인 내용도 녹여져 있다. 작품에는 로드킬을 당한 친구를 떠나지 못하는 고양이, 니트로 만들어지기 위해 온몸의 털이 뽑히는 토끼, 뜬장에 갇혀 식용으로 길러지는 개, 세상을 떠난 동네 고양이를 위로하는 저승사자, AI 살처분을 피해 도망가는 닭 등의 사연도 담겨 있다.
특히 작품에는 유독 갓을 쓴 저승사자가 많이 등장한다. 박씨는 "동물보호 활동가로 일하면서 버려지거나 집을 잃은 동물을 많이 접하게 됐다"며 "동물의 안타까운 죽음을 바라보면서 동물이 죽은 다음 세계에 대한 에피소드를 그리게 됐고, 동물을 위로하는 저승사자를 등장시켰다"고 설명했다. 특히 보호자에게 버림받고 천국으로 오게 된 개에게 저승사자가 망각의 차를 건네는 작품은 당시 인기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 착안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냅킨에 그림을 그리게 됐을까. 박씨는 우연히 카페에 들렀다 냅킨에 펜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색상과 번지는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또 작은 냅킨이어서 부담 없이 그릴 수 있었던 점도 작용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잘못 그리게 되면 수정이 어려워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하고, 아무래도 재질이 약한 게 단점이다. 또 작은 냅킨에 담을 내용이 제한적이어서 지금은 웹툰 작업을 하고 있다 .
지난 6일 출산을 한 박씨는 출산준비 등으로 그동안 잠시 작품을 쉬었다. 그는 "안락사, 살처분으로 죽어 간 수많은 동물의 사연을 모두 알 수 없지만 일부라도 작품을 통해 알리고,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갖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