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지도, 귀하지도, 고급 기술이 들어가지도 않은 액체(요소수) 하나 때문에 국민들의 이동과 물류가 올스톱될 위기에 처한 이 상황이 무척이나 황당하게 느껴지지만, 따지고 보면 비슷한 파동은 여러 번 있었다. 국지적이냐 전면적이냐, B2B냐 B2C냐 차이일 뿐, 특정 제품의 갑작스런 공급차질로 인해 경제의 순환이 막히는 현상은 최근 들어 꽤 자주 발생하고 있다.
작년 2월 현대차 울산공장이 멈춰 선 적이 있다. '와이어링 하니스'란 배선계통 부품 공급이 막혀서였다. 첨단부품도 아니었다. 거의 전량 중국에서 들여온다는 게 문제였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자국내 모든 공장을 가동중지시키자 이 부품 생산도 중단됐고, 부품 수입이 끊기는 바람에 결국 국내 자동차 생산라인, 연쇄적으로 타 부품과 타이어공장까지 휴업에 들어갔다. 요즘도 신차를 주문하면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데, 이 또한 부품(차량용 반도체) 공급부족 때문이다.
공급 차질은 늘 있을 수 있다. 때론 지진·화재 같은 재해 때문에, 때론 공장노동자나 항만노동자, 트럭운전기사들의 파업 때문에 공급이 막히기도 한다. 2010년 중국의 대일본 희토류 수출금지나 2019년 일본의 대한국 불화수소 금수조치처럼 자원이나 제품이 정치적 무기로 쓰인 적도 있다.
하지만 최근 빈발하는 공급위기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경제의 자유로운 교역과 번영을 지탱해온 글로벌 공급망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여기엔 '3C'로 압축되는 세 가지 중대 위협요인이 작동하고 있다.
첫 번째는 코로나(Corona)다. 코로나19는 강력한 전염력을 지닌 감염병이 세계교역을 어떻게 마비시킬 수 있는지 입증했다.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방역문제로 인해 특정국가가 셧다운될 경우, 혹은 2차 3차 부품업체들이 가동중단에 들어갈 경우, 전 세계 제품공급은 속절없이 마비된다. 반도체 대란도 그런 경우다. 코로나 감염으로 항만 하역이 지연돼 컨테이너선이 수십 척씩 바다 위에 떠 있고, 이로 인해 물품공급차질과 가격인상이 빚어지는 장면은 지금도 목격되고 있다.
두 번째 위협은 탄소(Carbon)다. 따지고 보면 요소수 파동도 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온실가스규제가 없었다면 디젤차에 요소수를 넣을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중국이 탄소중립을 의식해 석탄발전을 줄이지 않고 전기료도 올리지 않았다면 요소 수출제한도 없었을 것이다. 철저히 경제성에 의해 작동했던 글로벌 밸류체인은 이제 탄소중립을 포함한 ESG(환경·사회적가치·지배구조)라는 새로운 기준에 의해 움직이게 됐다.
세 번째는 중국(China)이다. 지난 20~30년간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세계의 공장역할을 했던 중국은 이젠 '값싼 공급자'가 아닌 '위험한 독점공급자'로 바뀌었다. 특히 시진핑의 공격적 굴기정책이 전개되고 이로 인해 미중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중국과 거래가 많다는 건 더 이상 기회 아닌 위험요소가 됐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 등 4대 품목에 대한 공급망 정비를 최우선적으로 추진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요소수 파동 역시 과도한 중국 의존이 얼마나 큰 위협인지 입증했다.
우리나라는 수출국가다. 글로벌 밸류체인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지금까지는 저렴한 비용으로 원료와 부품을 조달하는 게 최선이었다. 특정국가 의존이나 탄소배출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밸류체인의 작동원리가 완전히 바뀌었고, 우리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많은 제2의 '요소수'들이 숨어 있는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비용절감보단 위기관리 차원에서 공급망을 재검검하고 재배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