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영국 ODA 기류 변화

입력
2021.11.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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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개발원조(ODA)를 놓고 영국 내부가 요즘 시끄럽다. 작년 9월 원조전담 독립 부처이던 국제개발부(DFID)가 외교부에 통합돼 외교개발부가 된 여파다. DFID의 예산이 외교부보다 6배 이상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꼬리가 몸통을 먹은 셈이다.

DFID가 사실상 해체된 배경에는 2019년 말 총선에서 보리스 존슨 총리가 속한 보수당이 노동당을 누르고 압승한 데 있다. DFID는 1997년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 시절 출범했다. 우리로 보면 외교부 등 각 부처의 원조정책과 한국국제협력단이 수행하는 집행기능이 통합된, ODA에 관한 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독립 부처였다. 영국이 콧대 높게 원조를 추진할 수 있었던 이유다.

DFID는 '개도국의 지속 발전과 복리증진' 목표 아래, 한국의 6배가 넘는 150억 달러(16.5조 원·2019-2020 회계연도)의 예산으로 빈곤이 극심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국에 집중 지원했다. 수혜국에서는 DFID 직원이 외교관보다 더 환영 받았고, 그러면서 외교부와 틈이 벌어졌다. 외교관들 사이에선 'DFID가 영국 외교와 무관한 ATM기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을 정도다. 이 맥락에서 존슨 총리도 외교장관 시절 두 부처의 통합을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통합에 우려가 적지 않다. 데이비드 캐머런 등 전직 총리들은 독립적인 원조 전담부처가 사라지고 ODA를 외교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 영국이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소프트 파워'를 상실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 언론도 원조가 외교정책에 좌우돼 원조 본연의 목표가 퇴색할 것을 우려한다.

영국은 지난 7월 국제사회를 한 번 더 놀라게 했다. 2013년 이후 유지하던 국민총소득 대비 ODA 비율 0.7%를 0.5%로 감축했다. 재무장관이 공공부채가 줄어야 '0.7%' 복원이 가능하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영국의 원조 빙하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ODA는 세금으로 하는 것이니 해당국의 정치·경제적 여건에 영향받는 것은 불가피하다.

우리나라는 2010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 가입과 함께 ODA 예산을 늘려왔다. ODA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역대 대통령들의 인식, 예산당국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ODA 예산은 4조784억 원으로, 9년 만에 배로 증가했다.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이지만, 선진국과 주요 공여국에 비해서는 미약한 수준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원조 예산을 2배 이상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국내서 ODA 속도 조절론 같은 원조 피로현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다행이다. 한국 밖에서 더 큰 한국을 만드는 이 작업이 계속되길 바란다.



최재영 국무조정실 국제개발협력본부 개발협력지원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