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철거 vs 재산권 보호... 표류하는 김포 장릉 훼손 논란

입력
2021.11.11 04:30
24면

편집자주

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심도 깊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지난 2일 찾은 경기 김포시 풍무동 소재 장릉(章陵). 조선 16대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추존ㆍ1580~1619)과 부인 인헌왕후 구씨(1578~1626)가 묻힌 곳이다. 200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40개 중 하나다. 상수리나무와 갈참나무가 우거진 산책로, 원앙새가 깃드는 작은 연지(蓮池) 주변에는 늦가을 정취를 즐기려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평일 오후인데도 주차장(67대)은 만차였다. 김포 장릉에는 단풍 절정인 이맘때 1년 중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려드는데 최근 왕릉 경관을 해치는 인근 검단신도시의 고층 아파트 문제가 불거지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능 아래 쪽 홍살문(왕릉이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붉은 기둥문)과 정자각(제사를 지내는 건물) 부근에선 경관 훼손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아파트 방향을 흘깃흘깃 쳐다보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장릉관리소 직원은 “논란이 불거지면서 해당 아파트에 입주할 것으로 보이는 주민들이 확인차 찾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아파트 12개동 공사 중단... 찬반 논쟁 뜨거워

김포시민들의 조용한 휴식공간이었던 장릉이 논란의 중심으로 떠오른 건 문화재청이 지난 8월 능 남서쪽 검단신도시에 아파트를 건설하고 있는 3개 건설사(대방건설, 대광이엔씨, 금성백조주택)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면서다. 이 건설사들이 검단신도시 1단계 지구(인천 서구 원당동)에 짓고 있는 아파트 44개동(3,401가구) 중 19개동(1,400여 가구)은 장릉 일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반경 500m 안쪽에 있다. 문화재청은 이 지역에 높이 20m 이상의 건물을 지을 때에는 건설사가 문화재청에 개별적으로 현상변경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심의를 신청하지 않아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해당 아파트들은 20~25층으로 건물 높이가 140m를 넘는다. 법원이 지난달 19개동 중 12개 동에 대해 공사 중지 가처분 결정을 내려 현재 2개 건설사 아파트 12개동은 공사가 중단돼 있다.

문제는 2019년에 착공된 이 아파트들의 공정률이 60%를 넘는다는 점이다. 골조공사는 완료됐고 내부공사에 착수한 단계다. 내년 하반기부터 입주가 시작되는데 공사가 재개되지 않거나 철거 결정이 내려질 경우 관계 기관과 건설사 간 대규모 소송전이 예상된다. 문화재청이 철거 명령을 내릴 경우 피해액이 1조 원대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피해는 고스란히 입주예정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여론은 들끓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파트 철거를 촉구하는 청원과 입주예정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문화재청의 직무 태만을 고발하는 청원이 동시에 올라가는 등 문화재 보호와 재산권 보존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다.

현장에서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경관상 문제점은 장릉 봉분 정면에서 보였던 인천 계양산이 아파트로 가려진다는 점이다. 김포 장릉은 원종의 아들인 인조가 묻힌 북쪽의 파주 장릉(長陵)과 남쪽의 계양산을 잇는 축선 위에 있는데 이번 아파트 공사로 축선이 끊어졌다. 실제로 봉분 정면에서 아파트들이 계양산을 가리는지를 자세히 살펴봤다. 봉분에서 아파트 공사장까지의 거리는 1.5㎞ 정도인데 아파트와 타워크레인들이 병풍처럼 산을 가린 풍경이 멀리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자리를 조금 옮기거나 보는 각도를 달리하면 계양산의 산 정상부가 시야에 들어오기도 했다.

현장을 찾은 시민들의 의견도 엇갈렸다. 아파트가 왕릉 경관을 해치기 때문에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과 경관 훼손은 과도한 비판이라는 의견으로 나눠졌다. 골조가 다 올라간 아파트를 철거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견해도 갈렸다. 김포시 풍무동 주민 이미숙(63)씨는 “건설할 때 법이 제대로 안 지켜진건 문제이지만 아파트가 왕릉을 직접 훼손하지는 않아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보지 않는다”며 “이미 다 올라간 아파트를 해체하자는 주장에는 반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검단신도시에 거주하는 주민 유호승(70)씨는 “왕릉을 내려다보는 아파트 모습이 볼썽사납다”라며 “세계문화유산이면 국보급인데 이런 식으로 엉터리 행정을 한다니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면서 해당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도 동요하는 분위기다. 집단행동으로 표면화되고 있지는 않으나 입주예정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서는 문화재청 조치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자는 분위기다. 이 중 일부는 최근 지역구 의원을 찾아가 문화재청 조치에 대한 항의의 뜻을 전달하기도 했다. 검단신도시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하영(50)씨는 “내년에 공사 중지된 아파트에 들어가야 하는데 제때 입주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입주 예정자들 전화가 잦아졌다”며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인근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진우영(57) 대표는 “몇 개 동만 건설이 중단돼도 전체 단지 준공 허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30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규제 강화 알았나?... 기관 간 책임 공방만

이번 사태가 경찰 수사로까지 이어지면서 문화재 보호 주무부처인 문화재청과 사업계획을 승인해 준 인천 서구청, 건설사 간 책임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쟁점은 해당 지역에 높이 20m 이상 건물을 건설할 때 건설사들이 별도의 현상변경 심의를 받도록 한 문화재청의 조치를 인천 서구청과 건설사들이 의도적으로 묵살했는지 여부다. 경찰 수사도 이 대목에 집중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17년 1월 관련 내용을 고시(문화재청 고시 18932호)했는데, 인천 서구청은 문화재청이 이런 내용을 통보해주지 않아 이번 사태가 빚어졌다고 주장한다. 인천 서구청은 또 아파트가 착공된 지 1년 이상 지나 골조가 거의 다 올라갈 때까지 문화재청이 왕릉 주변의 개발행위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은 올해 5월 장릉 인근에서 고층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고 밝혔다. 만약 문화재청이 조금이라도 일찍 공사 사실을 인지했다면 재설계 등 대안 조치가 가능했을 것이라는게 인천 서구청의 생각이다. 현재 장릉에는 문화재청 공무원 3명을 포함해 직원 22명이 근무 중이다.

반면 문화재청은 관련 고시를 지자체에 통보해줄 의무가 없으며 해당 아파트가 건설된 지역이 이미 2003년부터 문화재 500m 안쪽 영향권 내에 있었으므로 지자체와 건설사들이 착공 전 문화재 관련 규제가 변동됐는지를 확인해야 했다고 반박한다. 문화재청이 사전에 불법공사 여부를 파악하지 못한 점과 관련, 장릉관리소 직원은 “인근 개발현장을 일일이 파악하기 힘들뿐더러 현장에선 그 건물이 불법으로 착공됐는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은 적법한 인허가 절차를 밟아 착공했으며 이번 사태가 ‘기관 간 불통에 따른 행정사고’라는 입장이다.

이 문제의 1차적인 결론은 전문가들로 이뤄진 문화재위원회가 내린다. 건설사들은 문화재위에 현재 아파트 높이 유지를 전제로 색상 조정, 정자 설치, 산책로 조성 등을 대안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열린 문화재위 회의에서는 이 개선안으로는 “장릉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보류 결정을 내린 뒤 추가 논의를 하기로 했다. 다만 아파트 철거 등의 조치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 회의에 참여했던 강현숙 문화재위 세계유산분과 위원장은 “사안이 엄중해 단순히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도 “조선 왕릉이 어떤 조건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번 사태로 조선왕릉이 세계문화유산에서 해제되는 것 아니냐는 점이다. 문화재청도 “장릉의 훼손은 단지 장릉 한 건에 대한 영향이 아니라 조선왕릉 전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1,154건의 세계문화유산 중 오만의 아라비아 영양서식지, 영국 리버풀, 독일 드레스덴 엘베 계곡 등은 영양 개체 감소, 건설행위에 따른 경관 훼손 때문에 세계문화 유산에서 해제된 바 있다.

안창모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는 건설회사가 당연히 밟아야 할 절차를 건너뛰고 큰 이익을 취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본다”며 “철거나 부분적 해체 없이 이번 사태가 마무리된다면 세계문화유산 해제는 물론 향후 문화재 관리에도 심대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화재청 학예연구관 출신인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40개 왕릉이 하나로 묶여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이라 장릉 하나만 문화유산 해제를 요청할 수도 없는 등 해법 찾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문화유산은 건축물과 달리 훼손되면 되돌릴 수 없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칠 수 없는 분야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양자 피해 최소화 전제로 대안 마련해야

이번 사태의 책임 소재를 놓고 상당한 논란이 예상되고 수분양자들의 입주까지 1년도 안 남았다는 점에서 묘안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다만 입주예정자들의 피해 최소화를 전제로 해법을 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영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문화재 보존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철거 결정은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문화재위도 한 발 물러서 타협점을 찾되 예상되는 피해에 대해서는 건설사가 앞장서 보상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희권 교수는 “문화재청, 인천서구청, 건설사 중 어느 주체가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지 가려진다면 그쪽에서 피해자 보상책을 적극 제시해야 한다”며 “부분 철거가 되든 전면 철거가 되든 피해자들의 이사비용 등 현실적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국회 문화체육관광위)은 “이번 사태는 문화재청의 허술한 점검과 공유채널 미비, 지자체의 법률적 판단 부족, 건설사의 무책임한 사업 진행이라는 삼박자가 맞춰지면서 발생한 인재(人災)”라며 “문화재 보존이라는 대원칙 하에 입주민들이 선의의 피해를 보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왕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