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도 인력유출에 떤다... "개발자가 갑, 특급대우 보장"

입력
2021.11.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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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 "보너스 1억원"에 대기업도 연봉 줄인상
내부 벤처 프로그램... "안에서 창업" 유도도
"취업금지 제도 있지만 실제 소송은 어려워"
실리콘밸리 출신 영입, 내부 인력 재교육도


취업준비생에게 '꿈의 직장'으로 꼽히는 대기업도 개발자 인력 유출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들은 파격적인 연봉 인상, 사내 창업 보장 등을 내세워 개발자 붙잡기에 나서고 있지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인터넷 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최근 전 직원에게 자사주를 100주씩 지급했다. 1인당 3,000만 원가량의 파격 혜택이다.

이는 최근 개발자 연봉 인상 바람과 무관치 않다. 올해 초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 인터넷·게임 기업은 개발자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기본급을 1,000만 원 이상씩 인상했다. 토스의 경우 이직 시 일시 지급 보너스로 1억 원을 약속하며 개발 인력을 쓸어갔다. SK텔레콤,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도 이런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프로젝트 단위 업무... 팀 통째 이직하면 대형 사고"

사실 대기업에서 소수의 개발자 유출이 전체 사업에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개발 업무가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되고, 개발자마다 역량 차이가 큰 만큼 핵심 개발자의 가치는 더 오르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올 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인공지능(AI) 본부장급 인력이 쿠팡으로 이직하면서 내부에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고 들었다"며 "보통 임원급 인사가 이동하면서 팀 동료까지 데려가는 경우가 많아 회사로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개발자들이 상장을 앞둔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거나 창업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대기업도 이에 발맞춰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임직원에게 1년간 현업에서 벗어나 자기 사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실패할 경우 다시 회사로 복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밖에 나가지 말고, 안에서 마음껏 창업하란 얘기다.

개발자의 1순위 기업으로 꼽히는 네이버나 카카오(네카오)도 인력난을 호소한다. 당근마켓, 두나무, 호갱노노 등 네카오 출신이 창업한 스타트업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창업을 준비하는 직원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규 사업에 뛰어드는 대기업에서도 이들 인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지난 4월 현대차에선 송창현 전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본부장으로 영입하면서 주목 받았다.

대부분 기업에서는 1~2년 내 동종업계 취업 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만 실제 이를 근거로 소송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거물급이 아니면 실제 경쟁사에 다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소송을 걸 경우 고급인력 이직 사실이 알려져 오히려 회사 이미지에도 악영향이 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리콘밸리 출신은 부르는 게 값... 비개발 인력 코딩 교육 시키기도"

대기업은 인력 유출 최소화에 힘을 쏟는 한편 충원에도 열중이다. 주로 구글, 아마존 등 실리콘밸리 출신 개발자나 아이비리그급 대학에 다니고 있는 개발 인력이 주요 공략 대상이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채용 가능한 인재풀도 더 확대됐다. 기존 직원을 개발 인력으로 전환하거나 일단 비전공자를 뽑아 개발자로 키우겠다는 기업도 있다. KT의 경우 현장직 등 비개발 직원에게 6개월간 AI·클라우드 교육을 진행해 개발자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한 정보기술(IT) 업체 인사담당자는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는 40대 한인 개발자의 경우 관리자급으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어, 주로 이들을 공략한다"며 "핵심 인력은 부르는 게 값이라 자체 육성도 병행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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