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에게 '꿈의 직장'으로 꼽히는 대기업도 개발자 인력 유출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들은 파격적인 연봉 인상, 사내 창업 보장 등을 내세워 개발자 붙잡기에 나서고 있지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인터넷 기업이나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면서 비상이 걸렸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최근 전 직원에게 자사주를 100주씩 지급했다. 1인당 3,000만 원가량의 파격 혜택이다.
이는 최근 개발자 연봉 인상 바람과 무관치 않다. 올해 초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 인터넷·게임 기업은 개발자 유치를 위해 경쟁적으로 기본급을 1,000만 원 이상씩 인상했다. 토스의 경우 이직 시 일시 지급 보너스로 1억 원을 약속하며 개발 인력을 쓸어갔다. SK텔레콤,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도 이런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대기업에서 소수의 개발자 유출이 전체 사업에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개발 업무가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되고, 개발자마다 역량 차이가 큰 만큼 핵심 개발자의 가치는 더 오르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올 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인공지능(AI) 본부장급 인력이 쿠팡으로 이직하면서 내부에서 상당히 혼란스러웠다고 들었다"며 "보통 임원급 인사가 이동하면서 팀 동료까지 데려가는 경우가 많아 회사로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개발자들이 상장을 앞둔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거나 창업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대기업도 이에 발맞춰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임직원에게 1년간 현업에서 벗어나 자기 사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실패할 경우 다시 회사로 복귀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밖에 나가지 말고, 안에서 마음껏 창업하란 얘기다.
개발자의 1순위 기업으로 꼽히는 네이버나 카카오(네카오)도 인력난을 호소한다. 당근마켓, 두나무, 호갱노노 등 네카오 출신이 창업한 스타트업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창업을 준비하는 직원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규 사업에 뛰어드는 대기업에서도 이들 인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지난 4월 현대차에선 송창현 전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본부장으로 영입하면서 주목 받았다.
대부분 기업에서는 1~2년 내 동종업계 취업 제한 규정을 두고 있지만 실제 이를 근거로 소송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인터넷 업계 관계자는 "거물급이 아니면 실제 경쟁사에 다니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소송을 걸 경우 고급인력 이직 사실이 알려져 오히려 회사 이미지에도 악영향이 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기업은 인력 유출 최소화에 힘을 쏟는 한편 충원에도 열중이다. 주로 구글, 아마존 등 실리콘밸리 출신 개발자나 아이비리그급 대학에 다니고 있는 개발 인력이 주요 공략 대상이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채용 가능한 인재풀도 더 확대됐다. 기존 직원을 개발 인력으로 전환하거나 일단 비전공자를 뽑아 개발자로 키우겠다는 기업도 있다. KT의 경우 현장직 등 비개발 직원에게 6개월간 AI·클라우드 교육을 진행해 개발자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한 정보기술(IT) 업체 인사담당자는 "실리콘밸리에서 근무하는 40대 한인 개발자의 경우 관리자급으로 올라가야 하는 상황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어, 주로 이들을 공략한다"며 "핵심 인력은 부르는 게 값이라 자체 육성도 병행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