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고 생각하고 걷는다. 산책자들은 저 먼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시간이 지난 미래에도 거기 있을 것이다. 박솔뫼의 장편소설 ‘미래 산책 연습’은 그런 산책자들의 이야기다. 산책자가 주로 걷는 공간은 부산이다. 부산은 소설 속에서 어떤 공간인가? 주인공인 과거의 ‘수미’가 어린 시절 잠시 살았던 도시이다. 그 도시를 현재의 ‘나’가 다시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듣고 오래된 건물들을 천천히 바라본다.
소설은 마치 독자들을 그 산책의 동행자로 삼아 사건이 아닌 풍경을 보여주며, 천천히 앞도 아니고 옆도 아니고 위도 아닌 길들을 걸어 다닌다. 산책이니까 당연히 말은 많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소설은 그 리듬에 같이 발을 맞추어야만 감각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소설들을 읽으면서 기대하는 것들, 갈등의 첨예함이나 돌출한 캐릭터의 막다른 선택이나 반전 따위는 여기 없다. 그래서 안전하고 한적한 시간이 이어진다.
하지만 소설을 더 깊이 따라가다 보면 사실 그 시간들이, 그 산책들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 ‘연습’은 어떤 연습인가? 그 ‘연습’의 기원엔 80년대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놓여 있다. 지금은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변한 그 공간은 과거의 상처와 망각의 집합체이다. 큰 역사 아래에서 기억되고 애도된 인물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역사가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되지 못하고, 애도되지 못한 채 여전히 그 시간 안에서 살고 있다. 그 기억되지 못한 사람들을 끈질기게 기억해내는 게 소설의 일이다.
박솔뫼의 소설은 그 인물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되 역사의 방식이 아닌, 산책의 방식을 취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미래’를 계속 연습한다. ‘최명환’과 함께, ‘윤미’도 더불어, 그 목소리를 잊지 않으려고 연습한다. 같이 걷는 마음을 연습한다. 우리는 힘센 역사소설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 역사소설들은 그러나 문장과 화법 또한 ‘역사’의 기술과 많이 닮아 있었다.
박솔뫼는 그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목소리로 ‘역사’를 전유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함께 ‘체험’하게 만들어준다. ‘미래 산책 연습’은 우리에게 먼저 도착한 박솔뫼 소설이다. 우리는 같이 산책하기만 하면 된다. ‘옆으로 뛰는 어린 사람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 마음이 다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