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과 안철수의 대선

입력
2021.11.10 18:00
26면
18대 대선 문재인 지지 사퇴했던 후보
거대 양당 깨겠다며 이번엔 완주 공언
미래 새 정치 가능성 보여줄 계기 돼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대선 도전은 이번이 네 번째다. 하지만 유권자의 최종 선택 결과를 받아본 것은 지난 대선 한 번뿐이었다. 40대의 패기 넘쳤던 첫 도전은 민주노동당 경선에서 권영길 후보에게 꺾였다. 5년 뒤 2012년 선거에서는 진보정의당 경선에 단독 출마해 90%에 가까운 압도적인 지지로 후보가 되고도 대선 후보 등록을 포기했다. “진보적 시대 교체”라는 이상보다 박근혜 당선 저지라는 현실 문제 해결이 더 급했고 그래서 문재인으로 단일화를 선택했다.

후보 단일화와 사퇴의 아이콘이 된 정치인으로 안철수를 빼놓을 수 없다. 2000년대 중반부터 진보, 보수 정당의 동시 추파를 받던 그는 2011년 한사코 무상급식에 반대하며 물러난 오세훈의 뒤를 이을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다. 하지만 뜻밖에도 박원순에 그 자리를 양보하고 대선행을 택했다. 지금처럼 그때도 “정권교체”를 내걸었던 그가 목표를 달성하자면 역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의 단일화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거듭된 단일화 협의가 난항을 겪던 중 또 갑자기 후보 사퇴를 선언한다.

2012년 대선은 투표를 이틀 앞두고 사퇴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까지 포함해 어느 때보다 단일화 바람이 거셌던 선거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와 박근혜 당선에 대한 위기감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하지만 전에 없던 단일화 바람에도 결과는 문재인 후보의 패배였다. 정권교체라는 간판 아래 모였을 뿐 단일화 자체가 유기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지도와 당선 가능성에서 문재인 못지않던 안철수는 입후보를 포기하면서 “문재인 후보께 성원을 보내달라”면서도 “새 정치의 꿈은 미뤄졌다”며 재를 뿌렸다. 단일화 아닌 단일화였다.

대선 단일화를 일률적으로 옳다거나 그르다고 평가할 수 없다. 정당과 시민사회단체가 힘을 모았던 2012년 단일화는 미완성이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만들고도 김영삼 김대중 단일화 실패로 군사정권의 연장이 되고 만 1987년 대선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늦춘 안타까운 사례다. 하지만 정치적 지향이 같지 않으면서 지지자들의 바람까지 저버리는 정치공학에 따른 이합집산이 바람직할 리 없다.

심상정의 정의당은 지금 여당과 정책 방향에서 상당한 교집합이 있지만 이질적인 부분도 적지 않다. 촛불시위의 열망을 실현할 책임을 진 민주당에 실망하는 유권자에게는 민주당 2중대가 아닌 정의당의 홀로 서기가 갖는 무게감이 있다. 지난 대선에서 거둔 진보정당 후보 최초의 6%대 지지라는 성과도 무시하기 어렵다. 안철수의 ‘새 정치’가 무엇인지는 지금도 아리송하지만 20대 총선의 국민의당 돌풍과 지난 대선의 21% 득표는 여전히 의미심장하다.

이번 대선은 형세로도 두 후보 모두에게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금보다는 더 큰 확장성을 기대할 만하다. 거대 양당 후보에 대한 비호감이 어느 때보다 만만치 않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10명 중 6명인데 대통령으로 윤석열이 좋다는 사람은 이 중 절반이 안 된다는 조사도 있다. “지면 감옥 갈 선거”라는 말까지 나오는 판이니 젊은층 중심으로 부동표가 많은 것도 당연하다.

무엇보다 낡은 양당 체제를 균열 내 다당제 연합정치의 토대를 만들려면 이들의 선전이 필수다. ‘부동산’과 ‘공정’도 필요하지만 이런 정치개혁의 계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이번 대선에서 두 후보로 향한 민의를 확인할 수 있어야 유명무실해진 선거법을 제대로 손보는 등 고장 난 대의제를 바로잡을 동력이 생긴다. 거대 양당은 이런 시급한 개혁 과제에 더 이상 의욕적이지 않다. 두 후보가 단일화 않겠다는 초심을 지켜 지난 대선 못지않은 성과를 내고 그를 토대로 한국 정치에 새 바람을 일으켜주기를 기대한다.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