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반대'가 드라마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어요. 영화에는 극장의 큰 화면이 주는 압도감이 있고,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제한이 덜했죠.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어 영화가 더 안정적이고 보수적으로 변하고 오히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콘텐츠가 더 다양해졌어요. 극장의 큰 화면만 포기하면 더 모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제 생각도 바뀌었고요."
1998년 영화 '조용한 가족'으로 데뷔해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 등 20여 년간 영화에만 전념해오던 김지운(57) 감독이 처음으로 드라마 연출에 나섰다. 지난 4일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 미국 OTT업체 애플TV플러스의 첫 한국 드라마 '닥터 브레인'이 그의 첫 드라마 연출작이다. 총 6부작 중 11일까지 2부가 공개된 이 드라마는, 두 사람의 뇌를 연결해 타인의 의식과 기억에 접속할 수 있는 기술을 찾아낸 뇌과학자가 자신의 가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웹툰 작가 홍작가의 동명 웹툰을 극화한 것으로 4일부터 매주 한 편씩 공개된다.
처음 드라마 시리즈 연출을 맡게 된 김 감독은 영화와 달리 드라마만의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10일 온라인으로 만난 김지운 감독은 "(하루에 찍어야 할) 분량과 (정해진 시점까지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시간의 압박이 컸다"면서 "각 편마다 이야기를 매듭지으면서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감독 고유의 인장을 남기는 데 공을 들이는 영화와 달리 이야기 전개에 꼭 필요한 것들만 전달하자는 자세로 긴밀하게 연출하다보니 놓치는 것도 얻는 것도 있었단다. "시도해보고 싶은 걸 절제해야 했던 측면은 아쉬웠지만, 탄력 있게 주어진 시간을 꽉 채워 쓰는, 생소하면서도 신선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닥터 브레인' 1부 공개 후 소재의 독특함뿐만 아니라 김 감독 특유의 감각적인 미장센이 인상적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그는 "이야기 전달에 신경 쓰느라 상대적으로 미장센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 했는데 이런 반응을 보니 제가 앞으로 취해야 할 이상적인 연출 방식이 드라마 제작 환경 덕분에 구현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범죄 수사물에 가까웠던 원작 웹툰에 비해 드라마 시리즈는 가족 드라마의 요소를 부각했다. 그가 '닥터 브레인'을 ‘가족 미스터리 뇌 추적극’이라 칭한 이유다. 영화 '인셉션' '트랜센던스' 등 인간의 의식, 기억, 꿈에 접속하는 설정의 작품이 이전에도 여러 편 있지만 그는 "'닥터 브레인'만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데뷔 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까지 직접 시나리오까지 쓰며 연출하던 김 감독은 이후 주로 공동 집필하거나 다른 작가가 쓴 시나리오로 연출하고 있다.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김 감독은 "순수 영화광의 자세로 영화를 동경하고 영화에 대한 판타지와 비전을 갖고 임하던 때로 돌아가는 게 어렵다"면서 "혼자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체력적으로 힘이 들고 아이디어가 고갈된 측면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나만의 특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마음 속으로 개발하고 있고 언젠가는 다시 시도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