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에서 펼쳐지는 복수극… 어? 주인공이 모두 흑인이네? [몰아보기 연구소]

입력
2021.11.1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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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하더 데이 폴'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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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앞둔 가정은 평화롭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아들이 기도를 하고 음식을 막 뜨려는 순간 누군가 찾아온다.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다가 유령을 본 듯 놀란다. 악당이 등장한 것이다. 악당은 잔혹하게 아버지와 어머니 목숨을 앗아간다. 시기는 19세기 언저리이고 장소는 미국 서부 어느 곳이다. 어린 아들은 훗날 복수심에 불타는 건장한 사내가 될 게 분명하다. 서부극의 전형으로 시작을 알리는 이 영화는 이전 서부극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①주요 인물은 모두가 흑인

주요 등장인물은 흑인이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에 나서는 무법자 냇(조너선 메이저스), 냇의 연인 메리(재지 비츠), 냇이 쫓는 불한당 루퍼스(이드리스 엘바), 루퍼스를 돕는 여인 트루디(리자이나 킹) 등은 흑인이다. 냇과 루퍼스 주변 인물들도 모두 흑인이다. 이들이 머무는 마을의 사람들, 잠시 들리는 바의 손님들까지도 온통 피부색이 검다.

백인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루퍼스 부하 일당이 벌판을 내달리는 열차를 습격할 때 백인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체제를 지키는 인물들로 등장하는데, 루퍼스 일당에게 별 힘도 쓰지 못하고 당한다. 백인은 주변부 인물로 냉소의 대상이고, 바보 같은 피해자다. 그들은 그저 이야기를 전진시키기 위한 소모품으로만 쓰인다.

②스크린을 흐르는 힙합과 솔

여느 서부극처럼 말을 타고 사람들이 평원을 내달리는 장면이 화면을 채운다. 호쾌하면서도 경쾌한 모습인데 이전 서부극과는 결이 다르다. 이유는 음악이다. 스크린에는 힙합이 흐르거나 솔(Soul) 음악이 깔린다.

음악만이 서부극의 전형을 벗어나는 게 아니다. 여성들의 역할이다. 악당이든, 선한 인물이든 여성들은 주체적이다. 총을 피해 남성의 등 뒤에 숨지 않는다. 장총을 들고 적진에 뛰어들거나 어느 총잡이 못지않게 권총을 빠르게 다룬다. 여성들끼리 몸싸움을 펼치는 장면이 박진감 있게 그려지기도 한다. 여성을 피해자이거나 남성의 보조적 존재로만 묘사되던 이전 서부극과는 다르다.

③호쾌한 액션, 서부극의 맛

주인공 냇이 악당 루퍼스를 쫓는 과정은 서부극의 전형성을 따른다. 루퍼스는 악랄하고 그의 세력은 강력하다. 냇의 복수는 쉽지 않다. 냇은 권선징악의 서술을 따르며 어렵사리 복수에 성공한다. 하지만 복수를 실현하기 직전 반전이 있다. 영화는 복수의 쾌감을 전하면서도 잔혹한 서부의 현실을 묘사하기도 한다.

눈에 띄는 영상이 여럿 있다. 지폐가 가득 든 마차를 폭발시키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불붙은 돈이 마치 금처럼 하늘에서 빛나다 재가 되는 모습은 허무하면서도 아름답다.

※몰아보기 지수: ★★★(★ 5개 만점, ☆은 반개)
옛날 옛적 서부에는 백인만 있었던 게 아니다. 흑인도, 아시아인도, 멕시코인도 있었다. 다종다양한 사람들이 무법지대에 살며 새로운 삶을 개척했으나 서부극은 백인 남성들의 영웅서사에 초점을 맞추고는 했다. ‘더 하더 데이 폴’은 영화사들이 오랜 시간 생략했던 흑인들의 서부 이야기를 불러낸다. 흑인들의, 흑인들에 의한 서부극이나 모두가 즐기기 좋은 영화다. 화려한 색감이 눈길을 끌고, 흥겨운 음악이 귓가에 맴돈다. 영국 가수 겸 음악 프로듀서인 제이메스 새무얼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영화팬이라면 눈 여겨 봐야 할 감독이 하나 더 늘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