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이 영장을 통해 압수한 피의자 소변에서 양성 반응이 나와 투약 사실이 증명됐다면,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투약 날짜와 실제 투약 시점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유력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9일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등 혐의로 기소된 50대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1·2심은 인정하지 않았던 '마약 양성 반응' 소변의 증거능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경찰은 “A씨가 2019년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 필로폰을 투약하고, 2019년 9월 중순 필로폰을 소지했다”는 내용으로 그해 10월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았다. 영장의 유효기간은 그해 12월 초까지였다. 경찰은 A씨의 소재를 파악해 10월 말쯤 그의 소변과 모발을 압수, 감식을 맡겼다.
이후 소변 결과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자 A씨는 “10월 26일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자백했고, 검찰은 이를 근거로 그를 필로폰 소지 및 투약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A씨는 동거 여성을 수차례 폭행해 상해를 입히고, 물건을 부순 혐의로도 기소됐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영장에 기재된 투약 범행 시점’과 ‘실제로 기소된 투약 범행 시점’이 다르다는 점이 쟁점이 됐다. A씨 측은 '8월 말~9월 초' 투약이 이뤄졌다는 내용의 영장을 이용해, 10월 말 투약 혐의를 찾아내 기소한 것은 '위법한 증거 수집'이라는 주장을 폈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소변 및 모발 검사 결과는 압수영장 기재 혐의사실과는 무관한 별개의 증거를 압수한 것"이라며 A씨 주장을 받아들였다. 필로폰 소지 혐의에도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선고됐다. 2심 재판부도 마찬가지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소변 감정 결과에 의해 피고인이 반복·계속적으로 필로폰을 투약해온 사실이 증명될 경우, 영장 기재 범행 시점 무렵에도 유사하게 투약하였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할 것”이라며 “비록 (뒤늦게) 영장이 집행돼 압수된 소변으로 혐의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는 없다고 해도 유력한 정황증거 내지 간접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