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종차별 학살 희생자, 123년 만에 영면

입력
2021.11.0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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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 대학살
희생자 조슈아 할시, 123년 만에 장례식 엄수


인종차별의 희생자가 평온한 안식을 취하기까지는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123년 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자행한 흑인 학살 사건의 희생자 중 한 명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희생자들의 규모가 상당하고 유해 발견도 줄 이을 것으로 보여 때늦은 장례식 행렬은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 CNN방송 등은 6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 ‘파인 포리스트’ 묘지에서 1898년 학살 사건 희생자 조슈아 할시의 뒤늦은 장례식이 열렸다고 전했다. 이번 장례식은 윌밍턴시 및 여러 단체가 이른바 ‘1898년 대학살’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달 1일부터 10일까지 계획한 일련의 행사 중 일부다.

장례식에서는 지금도 암암리에 진행 중인 인종 차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것을 주문하는 추도사가 낭독됐다. 할시의 후손들은 물론 백인 군중도 참석한 이번 장례식에서 윌리엄 바버 목사는 “우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회 전체에 침투해 있는 인종차별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학살 주도자인 알프레드 무어 와델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비유했다. “할시는 당시 노스캐롤라이나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흑인과 백인이 섞이는 것이 위험하다고 선동한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와델)에 의해 살해됐다”라며 “다시 말하면 그는 대중을 모아놓고 선동하길 잘하는 사람에 의해 죽었는데, 낯익지 않은가”라고 말하면서다.

할시의 증손녀이자 역사 교사인 그윈돌린 알렉시스는 학교에서 윌밍턴 학살을 포함한 미국 근현대사를 가르쳤지만 자신이 희생자와 관련이 있는 줄 몰랐다고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알렉시스는 “나의 증조부가 학살 희생자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숨이 멎는 것 같았다”며 “나의 가족을 찾았을 뿐만 아니라 역사를 직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라고 CNN에 말했다. 또 “진실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지만 더 많이 이야기하고 인정하게 된다면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살 당시 40세였던 할시를 포함한 많은 흑인은 이 묘지 인근 습지에 숨어 있다가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학살자들은 흑인 희생자의 시신을 강물에 던지거나 불에 태우거나 집단 매장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할시는 수기로 표시된 묘지 지도가 발견돼 디지털화되면서 유해 매장지가 발견된 첫 희생자다. 학살 희생자 매장지 관련 프로젝트 ‘제3자 프로젝트’의 일원인 존 에레미아 존슨은 CNN에 "사건 희생자는 25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희생자 시신 추가 발굴 가능성을 짐작케 하는 발언이다.

한편 1898년 학살은 당시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에 의해 저질러진 조직적인 흑인 학살 사건이었다. 민주당은 당시까지만 해도 남부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세력으로 백인 자경단을 조직해 흑인에 대한 대규모 학살을 저질렀고, 이 사태로 인해 미국 사회에 ‘짐 크로우 법’으로 대변되는 흑백차별이 20세기 중반까지 이어지게 한 세력이다. 현재의 민주당과는 이념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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