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요구한 '반도체 공급망' 자료 제출 마감 시한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해당된 국내 기업들의 정보 공개 수위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다행히 앞서, 미국 측의 반도체 공급망 자료 제출에 동참한 해외 기업은 핵심인 고객사 정보 등을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도 주요 기밀을 뺀 상태로 미국 측에 자료를 제공할 예정이다. 하지만 제출된 국내 기업의 자료에 대해 미국 측에서 미흡하다고 판단할 경우, 돌아올 후속조치 가능성은 남아 있다.
8일 미국 연방 관보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세계 1위 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를 비롯해 ASE(대만·세계 1위 패키징 업체), 미국 메모리 회사 마이크론 등 23개 기업이 미 정부에 반도체 공급망 관련 제료를 제출했다.
앞서 미 정부는 지난 9월 24일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대상으로 주요 정보 제출을 요구하면서 마감 시한을 이달 8일 자정(한국시간 9일 오후 2시)으로 못 박았다. 고객사 정보, 재고 현황 등이 담긴 26가지 질문지에 답을 달아 미국 관보에 문서로 올려달라는 요구였다.
다만 미 정부가 최근 기업들 요구를 받아들여 고객사 정보 등 민감한 정보는 제외하는 걸 허용하면서 기업들의 자료 제출 부담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날까지 기업들이 미국 관보에 올린 문건을 보면 이미 시장에 공개된 기초 정보만 적혀 있을 뿐 핵심 영업정보는 모두 빠져 있다.
TSMC는 지난 5일 총 3건(2건은 비공개)의 문건을 올렸는데, 이 중 공개된 문서를 보면 고객사·재고 현황 등 10여 개 항목은 아예 빈칸으로 뒀다. TSMC가 미 정부에 문건을 제출한 뒤 "고객의 기밀을 보호한다는 일관된 입장에 따라 특정 고객의 자료는 공개하지 않았다"고 밝힌 점에 미뤄볼 때, 비공개 문서에도 고객사 정보 등은 빠졌을 것이란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국내 반도체 기업의 자료 제출 부담도 다소 줄어든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TSMC가 낸 정보 수위 수준으로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다.
물론 처음만 해도 업계에선 미 정부의 자료 제출 요구에 꺼리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반도체 회사에 고객 정보는 그 자체로 1급 영업기밀이라, 자칫 외부에 새기라도 하면 고객사와의 관계 훼손으로 영업망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어서다.
이에 삼성전자를 비롯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선 워싱턴 현지 대관 조직을 통해 미 상무부에 지속적으로 자료 수위를 낮춰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업계 고위관계자는 "자국 정부에도 제출하지 않은 영업기밀을 미국에만 제출하는 건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미 상무부에 쏟아졌다"며 "여기에 각국 정부도 거듭 우려를 표하면서 미 정부가 자료 요구 수준을 낮춰준 걸로 안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미 정부가 글로벌 기업들에 한 차례 더 영업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미 정부는 "강제 조치를 해야 하는지 여부는 얼마나 많은 기업이 동참하느냐와 제공된 정보의 질에 달려 있다"고 압박한 바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미 정부가 반도체를 국가 안보로 여기는 상황이어서 각 기업들에서 제출한 정보가 미흡하다 판단되면 강제조치를 발동할 수도 있는 만큼 미 정부의 후속조치가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달 9~11일 미국을 방문, 지나 레이몬도 상무부 장관 등을 만나 이번 자료 제출 건에 한국 기업의 사정을 설명하고 협조도 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