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시 상공에서 폭발한 원자폭탄은 약 7만4,000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갔다. 수천 명에서 1만 명으로 추정되는 우리 동포들도 목숨을 잃었다.”
6일 일본 나가사키 평화공원에 세워진 나가사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의 안내문에는 이 같은 설명이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피해자 수나 난징대학살 피해자 수 등 일제의 만행에서 희생자 수는 항상 논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 중 한반도 출신자의 수는 수천~1만 명이라는 게 정설이다. 일본의 시민단체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과 그 창립자인 고(故) 오카 마사하루 목사의 헌신적 노력 덕택이다.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과 위령제가 있었던 이날 오후, 이 단체가 운영하는 나가사키시 소재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을 찾았다. 신카이 도모히로 부이사장과 이 모임의 회원 기무라 히데토씨가 자료관을 소개했다.
신카이 부이사장에 따르면, 오카 목사가 시의원으로 활동하며 조선인 피해 조사를 요구해 나가사키시가 1981년 발표한 조선인 피폭 사망자 수는 1,400명에 불과했다. 열정적 인권운동가였던 오카 목사는 “이런 바보 같은! 그렇게 적을 리가 없다고!”라면서 화를 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벌이던 시기, 나가사키에선 미쓰비시 조선소를 비롯해 군수산업이 번창했고, 식민지였던 한반도에서도 많은 노동자가 끌려와 일했기 때문에 원폭 피해자도 많았다는 얘기였다.
결국 오카 목사와 모임 회원들은 한반도 출신 피폭자의 증언을 수집하고, 당시 공장이나 탄광 직원 명부 등 각종 기록을 일일이 조사해 한반도 출신 사망자 수가 1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현재 7집까지 발간한 ‘나가사키 조선인 피폭자 실태조사보고서-원폭과 조선인’이 바로 이 단체의 보고서다. 일본 정부는 물론, 한국 정부조차 전혀 진상을 파악하지 못하던 중 일본의 양심적 시민들이 먼저 정확한 실태 조사를 한 것이다.
1979년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를 건립한 오카 목사는 일본인에게 자신들의 전쟁과 가해의 역사를 전해야 한다며 자료관 설립도 추진했다. 그러나 자금이 부족해 인부를 쓰지 못하고 회원과 함께 일일이 손으로 리모델링하다 1994년 여름 열사병으로 쓰러져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회원들이 그의 뜻을 이어 이듬해 이 자료관을 개관했다.
자료관 1층에는 당시 강제연행 등으로 일본에 온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이 기거하던 함바(공동숙소)와 탄광 갱도 등이 재연돼 있다. 계단 벽에는 제암리 학살, 유관순 열사, 난징 대학살 등의 사진 자료를 붙여 놓아 일본인에게 학살의 역사를 전하고 있다. 2층에는 이 자료관을 준비할 당시 과거 강제 노역에 대해 자세히 증언하며 협조하고, 극도로 빈곤한 상황에서도 자료관 설립을 위해 기부까지 한 고(故) 서정우씨에 대한 자세한 자료와 함께, ‘군함도’로 알려진 하시마섬을 비롯해 수많은 조선인이 노역했던 나가사키 인근 여러 섬에서 강제노역이 이뤄진 실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신카이 부이사장은 다만,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2015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한국 미디어의 관심이 지나치게 군함도에만 치우쳐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23곳이나 되고 한반도 출신 노역자가 3만 명이나 되는 반면, 군함도는 500~800명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강제연행 사례도 전체 산업유산 실태를 조사해야 더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카이 부이사장은 “가토 고코 일본산업유산국민회의 이사 같은 사람이 계속 군함도 얘기만 하는 이유는 23개 유산 전체로 넓히면 숨기고 싶은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에서 강제연행해 온 사례나 중국의 전쟁 포로는 물론, 연합군 포로로 온 네덜란드인 호주인 영국인 등까지 강제로 노역을 했던 사실이 드러나면 대응하기 어려우니, ‘군함도에선 모두 사이좋게 잘 지냈다’고 강변하며 포장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토 이사는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당시 강제노역 사실 등을 알리고 희생자를 기리라는 유네스코 권고에 따라 설립된 ‘인포메이션 센터’를 운영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 시설에선 이를 부정하는 내용의 전시와 해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유네스코는 일본 측에 ‘강한 유감’을 표명한 바 있다. 신카이 부이사장은 “우리도 역사를 전시하는 입장에서 엉터리 역사를 전시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