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고교 야구부원의 극단적 선택 ‘감독 폭언이 원인’... 9년 지나서야 인정 [특파원24시]

입력
2021.11.0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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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인과관계 알 수 없다"며 묵살
부모의 끈질긴 노력으로 인정받아

지난 2012년 일본 오카야마시의 고등학교에서 야구부 매니저였던 2학년 남학생 A군(당시 16세)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부모는 야구부 감독이었던 남성 교사의 심한 질책이 원인이라고 생각해 오카야마현 교육위원회에 조사를 요구했으나 묵살당했다. 포기하지 않고 제3자 위원회의 조사를 요구하는 등 부모의 끈질긴 노력 끝에 무려 9년이 지나서야 “감독의 질책이 (A군의) 극단적 선택 원인이었다”는 인정을 받아낼 수 있었다.

최근 요미우리신문과 마이니치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에 따르면, 오카야마현 교육위원회는 숨진 학생의 부모와 지난 3일 면담한 뒤 “(A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원인은 감독의 질책이나 체벌이며, 교사라는 입장을 이용한 괴롭힘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올해 3월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제3자 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가 “(사건 직후) 교육위원회의 조사가 불충분했다”고 지적한 데 대해서는 “조직으로서 보신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제3자 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면, 당시 야구부 감독이었던 교사는 A군이 실수를 했을 때 ‘죽여버리겠다’고 하거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의자를 들어올려 위협하는 등 항상 질책했다. A군이 야구부 일지에 “나는 무의미한 존재다” “이제 나의 존재 가치도 목표도 모르게 됐다”고 쓸 정도였다.

결국 2012년 6월 야구부를 탈퇴했지만, 동급생의 권유와 3학년의 은퇴로 매니저를 할 사람이 없어 복귀했다. 하지만 복귀 이틀 만에 한여름 뙤약볕이 내리쬐는 그라운드에서 “목소리를 내! 안 내면 매니저의 존재 가치가 없잖아” 등 감독의 계속되는 호통을 들어야만 했다. 이날 학생은 동급생에게 “이제 나는 매니저가 아니다. 존재하고 있을 뿐”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몇 시간 후 세상을 등졌다.

부모의 조사 요구가 있었으나, 현 교육위원회는 학생의 체벌과 감독의 폭언 사이에 “인과관계를 알 수 없다”면서 묵살했다. 하지만 부모는 포기하지 않고 증언 등을 수집, 제3자 위원회를 소집해 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결국 2017년 7월 제3자 위원회가 설치됐고, 올해 3월에야 “극단적 선택의 원인은 야구부 감독의 심한 질책 등이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현 교육위원회는 그후에도 아무런 설명이나 사과를 하지 않다가 부모의 계속된 항의와 언론 보도에 결국 부모와 면담한 것이다.

일본에선 2013년 ‘스포츠계의 폭력행위 근절 선언’이 있었으나, 운동부 감독이나 코치에 의한 괴롭힘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18년 이와테 현립고에선 배구부원이, 올해 1월에는 오키나와 현립고에서 운동부원이 감독의 폭언과 무시 등을 견디지 못하고 각각 숨졌다. 실제로 때리거나 발로 차는 등 물리적인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교사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했다는 점에서 A군과 비슷하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폭언 정도는 용인하는 풍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