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피해 입증, 주민 아닌 정부·기업이 책임져야 한다

입력
2021.11.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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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한국일보 공동주최 포럼]
정부 조직 내 환경피해 조사 기구 만들어야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금, '완전 배상' 목표로 해야

환경오염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여전히 피해 지원은 물론 입증조차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5일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와 한국일보가 공동 주최한 ‘환경오염 피해실태와 지원방안’ 포럼 참석자들은 개별 인과관계 입증이 어려운 환경성질환의 특성상 포괄적인 피해 인정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입증책임 주민에게 지우는 '기울어진 운동장'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오염 피해 구제제도를 연구한 강동묵 부산대 의과대학 교수는 현 제도를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표현했다. 피해 입증을 오염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피해자가 직접 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는 빠른 환경오염 피해 구제를 위해 신설된 '환경오염피해구제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제도는 원인자를 알 수 없는 환경피해 등에 국가가 우선적 지원을 한 뒤 차후에 기업 등에 책임을 묻는 구조다. 강 교수는 이날 발제자로 나서 "정부가 구상권 행사를 염두에 두고 구제심사를 하다 보니 실제로는 오염과 질병의 인과관계 판단이 너무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기준은 일본 등 다른 나라의 구제제도와는 사뭇 다르다. 스즈키 아키라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일본의 공해건강피해보상법은 오염지역 주민이 특정 증상을 호소하면 피해 환자로 인정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고 소개했다. 일본 석면건강피해구제법의 경우에도 “잠복기가 길고 인과관계 특정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구제대상을 넓혔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의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도 지난해 개정돼 오염과의 역학적 상관성(살균제 사용 여부)이 확인되면 피해를 인정하도록 변경됐지만, 아직 실제 구제 사례는 미흡하다.

참석자들은 환경피해 입증을 피해자에게 맡기는 대신 정부와 오염제공 기업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데에도 뜻을 같이했다.


정부 조직 내에 환경피해를 신속하게 조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이와 상반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발제에 나선 신혜정 한국일보 어젠다기획부 기자는 “최근 환경보건법 개정으로 건강영향조사 실시 주체가 중앙정부에서 시ㆍ도지사로 바뀌었는데, 조사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 비상임위원인 황정화 변호사는 "법상의 환경오염·피해 정의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환경오염피해구제법은 '환경오염'을 '시설의 설치운영으로 발생되는 오염'으로, 환경분쟁조정법은 '환경피해'를 '사업활동이나 사람의 활동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정하는데, 이는 가습기살균제 같은 오염물질 또는 불특정요인으로 인한 환경피해를 포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해지원 항목·금액 현실화해야

강 교수는 “환경오염 피해 구제는 ‘완전 배상’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질병 피해자들에게 의료비나 요양생활수당 등이 제공되고 있으나 항목이 제한적이거나 금액이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에게 책정된 간병비가 실제 비용의 절반에 불과한 것이 그 예다.

오염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나 사회활동 위축에 대한 구제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프랑스 석면피해자보상기금의 경우 보상항목에 질병 외에도 재산적ㆍ정신적 손해가 포함된다.

이동영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포괄적 지원금제 도입’을 제안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처럼 불특정 다수가 경험한 피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된 것으로 추산되는 인구가 350만~400만 명, 이중 실제 건강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추산되는 경우는 49만~50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올해 9월까지 제도적 지원을 받은 사람은 4,318명에 불과하다. 이 조사관은 “피해가 경미하거나 자료 불충분으로 피해신청조차 하지 못한 다수의 국민들을 두텁게 지원하려면 ‘국민지원금’ 형식의 지원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신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