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직종·전공 막론하고 '코딩 열풍'… 취업준비생에 또 다른 짐 될라

입력
2021.11.07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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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비 지원 코딩 수강생 작년 대비 4배 증가
'취업 경쟁력 위해' '개발자 몸값 높아서' 가세
적잖은 시간·비용 투입 불구 성과 장담 못해

"다들 개발자가 각광받는다고 하니까 관심이 생겨서 코딩 교육에 도전했습니다. 돈을 버리진 않았지만 아까운 시간을 버렸죠."

서울 소재 대학 신문방송학과를 나온 박모(27)씨는 사기업 취업을 준비하다가 코딩(컴퓨터용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으로 눈을 돌렸다. 번번이 채용에서 떨어져 다른 진로를 모색하던 차에 소프트웨어 개발자에 도전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고용노동부 국비 지원 사업에 참가해 6개월간 코딩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배워 보니 적성에 잘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반년을 투자했다고 개발자로 취업할 실력이 갖춰지지 않는다는 걸 절감했다. 박씨는 배운 시간이 아깝긴 했지만 코딩을 포기했고, 두 달 전 다른 직종에 취업했다.

희망 직종이나 전공을 막론하고 코딩 교육을 받는 취업준비생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부작용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프로그램 개발 능력을 갖춰야 직무 역량과 몸값을 높일 수 있다는 인식 탓에 취업시장에 '코딩 열풍'이 불고 있지만, 상당한 돈과 시간을 들여도 결과물은 구색 맞추기용 스펙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코딩 직업교육 참여자 1년 새 4배

2018년부터 초·중등학교에서 소프트웨어 교육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치면서 본격화한 코딩 교육 붐은 청년 구직난과 맞물려 취업시장으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7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비 지원 사업인 '디지털 핵심 실무인재 양성훈련(K-Digital Training)' 프로그램에 참여해 코딩 교육을 받은 인원은 올해 8,600여 명으로 지난해(2,100여 명) 대비 4배 이상 늘었다. 올해 프로그램 참가자의 99%가 코딩 교육생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소프트웨어 개발과 무관한 이력을 쌓아온 취업준비생들이 대거 코딩 교육에 뛰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장에선 △코딩 능력이 직무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거란 기대감 △정부 차원에서 개발 인력 양성을 위해 국비 교육 등 지원 정책을 펴는 점 △개발자에 대한 기업 수요가 높아지면서 처우가 좋아지고 있는 점을 주된 이유로 꼽는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하고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고자 하는 진모(25)씨도 올해 4월부터 5개월간 국비 지원을 받아 코딩을 배웠다. 진씨는 "헬스케어 분야에서 의료기기 등 상품기획 업무를 하고 싶은데, 스스로를 차별화하자는 생각에서 코딩을 배웠다"면서 "내가 가진 문과적 역량에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을 겸비하면 구매자에게 보다 어필하는 상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딩 교육을 받으면서 "개발을 잘 알아야 기획자로서 메리트가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는 진씨는 당분간 구직보다는 코딩 심화과정 교육에 전념하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심리학 전공자로 사용자경험(UX) 디자이너를 지망하는 김모(24)씨는 올해 상반기 사설 코딩 캠프에 등록해 5개월 과정을 수료했다. 김씨는 "대학 때부터 무언가를 디자인하는 업무를 하고 싶었는데, 전공만으로는 취업에 한계가 있었다"면서 "코딩을 배우면 역량 발휘가 가능할 것 같아 공부했고 결과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웬만큼 배워서는 활용 힘들어"

하지만 직업 교육으로서 코딩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취업준비생들이 막연한 기대로 코딩 교육에 투자할 경우 기대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란 것이다. 초심자라면 코딩에 입문하는 과정부터가 쉽지 않다. 코딩교육기관 관계자는 "훈련생의 20~30% 정도는 비전공자인데, 교육 과정 중 어렵다거나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며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다. 김씨의 경우 코딩캠프 전반기(3개월 반)엔 △오전 9시~오후 6시 수업 △오후 6시 이후 코딩스터디를 하는 빡빡한 일과를 매일 감당했고, 후반기(1개월 반)엔 지원 회사에 제출할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 다른 수강생 3명과 밤샘 작업을 예사로 하면서 프로젝트 2건을 수행했다. 이렇게 5개월을 보내면서 지불한 수업료가 850만 원에 달한다.

더구나 웬만큼 배워서는 직무에 활용하기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씨는 "6개월간 자바스크립트, CSS와 같은 웹개발용 언어를 배웠는데, 교육 수료 시점에 '개발 직종에 취업하려면 6~7개월은 더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고 말했다. 고액 연봉을 받는 개발자가 되려면 코딩 능력이 엄청 뛰어나야 한다는 걸 실감한 게 소득 아닌 소득이었다. 그는 "동료 수강생 대부분이 신중한 고민 없이 코딩 수업을 듣는 분위기였다"고도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코딩 교육이 취업준비생 입장에선 효율성 떨어지는 직업교육, 사회 전체적으론 자원 낭비가 될 수 있다는 염려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수강생 상당수가 코딩 교육을 실질적 업무 역량보다는 입사 지원용 이력서에 넣을 스펙쯤으로 여기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박준규 기자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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