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년 11월11일 사상자 1402명, 이리역 화약열차 폭발사고

입력
2021.11.11 05:30
1977년 11월 11일
급행료 받으려 열차 막고, 화약 속 촛불 켜고 잠들어

편집자주

한국일보 DB 속 그날의 이야기. 1954년 6월 9일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일보 신문과 자료 사진을 통해 '과거의 오늘'을 돌아봅니다.


1977년 11월 11일 밤 9시 15분, 전북 이리역 4번 입환선에서 인천을 출발해 광주로 가기 위해 대기 중이던 열차 1량이 폭발했다. 열차에는 다이너마이트 900상자(22톤), 초산암모니아 200개(5톤), 초육폭약 100상자(2톤), 도화선 50개(1톤) 등 합계 1,250상자 30톤에 달하는 화약류가 실려 있었다. 이 폭발로 이리역 구내는 깊이 10m, 직경 30m에 달하는 큰 웅덩이가 패였고, 반경 2㎞ 건물까지 파괴됐다.

당시 전라북도가 집계한 인명피해는 사망자 59명, 중상자 185명, 경상자 1,158명 등으로 총 1,402명에 달한다. 이재민 수만도 1,674세대 7,873명이나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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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피해를 가져온 이리역 폭발사고 원인은 황당하다. 인천에서 광주로 가던 화약운송 열차가 이리역에 도착한 것은 사고 전날인 10일 밤 10시 31분이었다. 원래 화약류 등 위험물은 역을 곧바로 통과시켜야 하는데 역무원들이 일종의 뇌물인 급행료 지급 문제로 시비가 붙어 다음날 밤까지 열차를 붙들어뒀다. 대기시간이 길어지자 화약열차 호송원이었던 신무일은 홧김에 술을 마신 뒤 열차 화물칸에 들어가 촛불을 켜놓고 잠들었다. 불이 붙은 걸 알고 깨어난 신씨는 진화가 여의치 않자 달아났고 불은 화약상자에 옮겨붙어 연쇄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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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기자
자료조사= 김지오 DB콘텐츠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