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에서 바티칸이라는 단어가 들릴 때면, 뎅그렁뎅그렁 낮은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다. 검푸른 새벽의 거리에 짙은 색을 더하던 사제들의 잠잠한 발걸음이 떠오르고, 그 발걸음을 따라 조용히 펄럭이는 사제복에서 번지던 서늘한 공기가 느껴진다. 번잡스럽지 않은 그 새벽이 좋아서 로마를 취재할 때면 바티칸의 성벽 바로 앞에다 굳이 숙소를 잡곤 했다.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 시내에 있고 같은 언어와 화폐를 사용하지만 엄연히 독립된 하나의 국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바티칸 시국이다. 숙소를 나와 바티칸의 광장을 거쳐 트레비 분수며 스페인 계단이 있는 로마 중심가로 걸어갈 때면, 초소도 검문소도 따로 없지만 아침저녁으로 국경을 넘나든 셈이다.
경복궁보다 조금 크고 창덕궁보다는 살짝 작은 영토의 중심은 '산 피에트로 광장'이다. 예수에게 천국의 열쇠를 받고 첫 번째 교황이 되었다는 베드로 성인을 부르는 이탈리아 식 이름이니, 그를 기리는 광장 역시 천국의 열쇠가 들어갈 열쇠구멍 모양이다. 차기 교황을 뽑는 비밀회의가 열리면 투표가 끝난 뒤 투표용지를 태우는 연기로 결과를 알리는데, 새로운 교황이 선출됐다는 뜻인 하얀 연기가 굴뚝으로 솟으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환호성을 지르는 곳도 이 광장이다.
그러니 광장에는 한번 스치듯이라도 교황을 만나고픈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있다. 신자라면 한번쯤은 꿈꾸는 교황 집전 미사에 참여하려면 발 빠른 예약이 필수,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미사는 반년 전부터 서둘러야 한다. 보다 많은 이들을 만나려고 넓은 광장에서 여는 일반 알현의 좌석 하나를 얻는 것도 치열하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교황궁 맨 위층의 창문 하나가 열리고 그 창에 교황이 나타나 축복을 내리는 때라도 기다리는 이들로 광장은 미어진다.
열쇠구멍 모양의 광장을 제대로 보려면 대성당 꼭대기 지붕으로 올라가야 한다. 551개의 계단을 모두 오르면, 교황청에서 이어지는 비밀통로가 있다는 산탄젤로 성을 지나 테베레 강 너머 로마시내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그 꼭대기에서 바라본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길은 로마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산책로. 이게 바로 로마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노르스름한 돌벽의 골목을 따라가면 머무는 공기마저 낭만적인 나보나 광장이 짜잔 하고 나타난다.
한때는 순례자들이 더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걸었다는 옛 골목이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한껏 달뜬 나보나 광장으로 이어지는 걸 보면, 성스러운 것과 속세의 것은 이리도 가까이에 있는 거구나 싶다. 교황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이 언제나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도 그러하리라. 소소하게는 교황이 들렀다는 아이스크림 가게나 빵집에서부터 첨예한 갈등이 있는 분쟁의 현장까지, 그가 가는 걸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따뜻한 기원이 담겨 있다.
바티칸을 떠나기 전 여행자들도 광장 한쪽의 우체국에서 엽서 한 장으로 마음을 담아 본다. 우체통 옆에 서서 꾹꾹 몇 자 눌러 적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바티칸이 가진 특별한 공기가 사람들에게 '진심'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해주지 않나 싶다. 바티칸만의 특제우표가 붙은 엽서로든, 우리 대신 걸어주길 바라는 교황의 큰 발걸음에 대한 기대이든,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출발하는 곳이 바로 바티칸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