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림 벌채 종식' 100개국 합의, 정치적 선언 그치지 않으려면?

입력
2021.11.03 21:00
17면
"실효성 있는 방안 후속 논의가 중요" 지적 나와
2030년 삼림 벌채 중단…개도국 삼림 보호 지원
환경단체들, 각국 정책 반영·국제감시기구 요구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의 첫 번째 결실은 ‘2030년까지 삼림 벌채 중단’ 합의다. 숲은 매년 이산화탄소 76억 톤을 흡수하는 ‘탄소 저장소’라는 점에서 결코 의미가 작지 않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건 실효성 있는 방안 도출을 위한 후속 논의다. 이번 합의의 구체적 이행 방안, 위반 국가에 대한 제재 수단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탄소시장에서 삼림의 값어치를 평가하는 표준을 마련하자는 의견도 있다.

2일(현지시간) 영국 글래스고에 모인 105개국 정상들은 2030년까지 삼림 파괴 중단을 약속한 ‘산림·토지 이용 선언’을 발표했다. 서명국의 삼림을 모두 합치면 전 세계 숲 85%를 차지한다. 특히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콩고민주공화국, 러시아 등 ‘지구촌 허파’로 불리는 나라들이 대거 동참한 건 고무적이다. 개발도상국 삼림 보호를 위한 재정 계획도 마련됐다. 영국 등 12개국은 120억 달러를, 유럽연합(EU)은 10억 유로를 각각 개도국에 지원하기로 했다.

환경단체들은 크게 반기면서도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구호로 그친 과거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세계 40개국 정부와 기업은 이른바 ‘뉴욕 선언’을 통해 2020년까지 삼림 벌채를 절반으로 줄이고 2030년에는 아예 중단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그 이후 7년간 벌채는 오히려 더 늘어났다.

관건은 각 나라의 실천 의지다. 그러나 물음표를 찍을 수밖에 없는 국가가 적지 않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화상 연설에서 “우리는 숲을 보존하기 위해 진지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염 및 가뭄에다, 관리 부실까지 겹쳐 매년 시베리아 산림이 불타고 있다. 올여름에도 러시아연방 사하공화국에서만 룩셈부르크 2배 면적이 산불로 사라졌다. 브라질 아마존 숲도 마찬가지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집권 이후 금광 개발 등으로 벌목 면적은 더 늘었다. 아마존 일부 지역은 이미 이산화탄소 흡수량보다 방출량이 더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불법 벌채가 이뤄진 아마존 나무들은 아무 제재도 없이 유럽 일부 국가로 수출되고 있다. 개간으로 숲이 사라진 땅에서 재배된 대두는 중국에 팔린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JP모건과 홍콩상하이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대형 은행과 자산운용사가 삼림 벌채 관련 주요 기업 20곳에 투자한 금액만 1,190억 달러(약 140조6,000억 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언이 공염불로 끝나지 않으려면 반드시 각국 정책에 반영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환경인권단체 글로벌위트니스의 삼림 정책 책임자 조 블랙먼은 “서명국들이 자국 기업에 삼림 벌채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경우 어떤 서약도 효과가 없다”고 단언했다. 합의 이행 상황을 감시, 추적할 국제 기관 설립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국제환경단체 마이티어스 글랜 유로위츠 회장은 “만약 감시 기능과 집행 능력, 투명성이 뒷받침된다면 이번 선언이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며 “유엔 산하에 ‘글로벌 삼림 벌채 관측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글래스고 회의에선 국제탄소시장의 세부 규칙도 논의될 예정이다. 삼림 보호 노력이 값으로 매겨져 탄소시장에서 거래토록 하자는 의견이 대표적이다. 이를 위해선 나무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데 기여하는 가치를 평가할 합리적 시스템과 표준 마련이 시급하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기후변화는 사기’라고 주장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나무 1조 그루를 심는 계획을 옹호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무는 기후 위기를 해결 못 한다. 오직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촌평했다.

김표향 기자
박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