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에 삼겹살만 있더냐

입력
2021.11.03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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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을 말할 때 내가 종종 거론하는 유머가 있다. 한국에서 수입하는 삼겹살로만 월드컵 16강이 된다는 얘기다. 독일, 브라질,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칠레, 미국, 멕시코,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덴마크… 농담이 아니다. 그냥 이들 팀으로 16강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삼겹살은 서양에서는 '양념' 즉 기름의 일부로 본다. 기름이니까 정육이 아니어서 값이 싸다. 한국처럼 구워서 먹는 경우는 아주 적다. 안창살이나 갈매기살이 갈비뼈 안에 있어서 '내장'의 일부로 봐서 값이 싼 것도 비슷한 이치다.

한국의 양돈업은 늘 고민하고 있다. 삼겹살 자급률이 50% 정도다. 한국은 삼겹살에 대한 관용도도 가장 넓다. 갈비뼈가 붙어 있던, 배쪽의 세 겹의 살을 원래 전통적으로 삼겹살이라고 보는데, 수요가 크니까 배 아래쪽의 살도 넓게 자른다. 그래서 한국의 삼겹살을 최초에 정육된 상태로 보면 세계에서 가장 크고 넓다(같은 돼지 크기로 보았을 때). 어떤 정육점은 돼지 등심 부위까지 붙여서 자른다. 등심은 삼겹살보다 훨씬 싼 부위이므로 같이 붙여 잘라 팔면 이득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렇게 잘라낼 때마다 그들도 갈등할 것이다. 이게 다 삼겹살에 지나친 애호가 몰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돼지 삼겹살을 유전학 기술로 획기적으로 더 크게 만들기도 어렵다. '하느라고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돼지고기 대표단체는 이른바 비선호 부위가 잘 팔리기를 바란다. 뒷다리가 대표적이다. 비선호부위가 잘 팔리면, 돼지 가격의 균형이 맞춰지고 삼겹살 가격이 내려간다, 소비자가 이익이다, 이런 논리다. 그렇게 애를 써 온 지 오래다. 비선호부위를 팔기 위해 빅모델을 써서 광고도 하고, 요리대회며 온갖 홍보행사를 해왔다. 그래봤자 내가 보기엔 큰 의미가 없다. 놀랍게도 자연스레, 시장이 알아서, 선구적인 셰프들과 미식가들에 의해 비선호 부위가 선호 부위로 바뀌고 있다.

우선 돈가스다. 뒷다리와 함께 싼 부위로 꼽히는 등심을 주로 이용하는 돈가스에 젊은 셰프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청년취업 문제가 요리계에도 퍼져서, 돈가스 같은 단품을 전문으로 하는 1인식당이 늘어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살짝 덜 익힌 이른바 '분홍색 돈가스'의 출현도 미식으로 분류되면서 돈가스의 인기가 올라갔다. 이른바 '인싸'들은 분홍색 돈가스를 먹는다, 이런 식이다. 실제로 살짝 덜 익혀도 일정 온도 이상 내부를 익히면 문제없다는 건 기생충학계에서도 인정한 사실이다. 옛날식으로 얇게 두들겨서 펴고 소스를 끼얹어주는 경양식집 돈가스나 기사식당형 돈가스도 레트로 바람을 타고 잘 팔린다. 원래 돈가스는 그렇게 얇게 펴서 튀기는 식으로 유럽에서 시작한 음식이니까 말하자면 오리지널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등심보다 훨씬 인기가 없던 돼지 안심. 급식용 불고기로나 겨우 팔리던 안심이 요새 시장에서 구경하기도 힘들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어떤 개발자가 안심이 아주 싸지만 지방이 거의 없는 고단백식품이라는 데에 주목했다. 여기에 단백질을 추가로 강화시켜 헬스와 다이어트 음식으로 개발했다. 대히트를 하기 시작했다. 안 팔려서 냉동고에 들어간 안심까지 다 끌어냈다. 대중들은 필요에 맞춰주면 산다. 헬스와 다이어트 붐은 골칫덩어리 안심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셈이다. 안 팔린다고 고민하는 여러 농수산물에 하나의 힌트가 된 사건이 아닐까 싶다.


박찬일 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