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반죽 빵' 팔기... 그들에게는 위험천만 사업인 이유

입력
2021.11.0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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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개봉 대안적 서부극 '퍼스트 카우'

우유로 반죽한 빵을 먹고 싶다. 하지만 불가능에 가깝다. 개척기인 1820년 오리건 지역은 젖소가 딱 한 마리밖에 없어서다. 지역을 통치하는 영국인 팩터(토비 존스)가 우유 넣은 차를 먹고 싶어 외부에서 최근 데려온 지역 최초의 소다. 물과 밀가루로만 만든 빵에 질려 있는 쿠키(존 마가로)가 제대로 된 빵을 그리워하자 친구 루(오리온 리)가 묻는다. “소에게 젖을 짜면 소리가 크거나 흔적이 남는가?” 쿠키는 고개를 젓는다. 둘은 곧 깊은 밤 팩터의 집 근처에 묶여 있는 소를 찾아간다. 다음날 우유가 들어간 빵을 먹어본 루가 제안한다. “시장에서 이걸 팔면 어떨까?”

빵 장사는 위험하다. 누군가 우유가 들어간 걸 눈치채면 끝장이다. 고민하던 쿠키는 루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요리사인 그는 샌프란시스코에 빵집이나 호텔을 열고 싶다. 큰돈이 필요하다. 위험천만한 장사라지만 떨치기 힘든 유혹이다.

빵은 금세 인기를 끈다. 사람들이 줄을 서다 새치기를 하거나 웃돈을 주고 사먹는다. 빵 맛에 대한 소문이 마을에 퍼진다. 빵이 모자라 못 팔 지경이다. 쿠키와 루는 밤마다 소를 찾아간다. 빵에 대한 소문은 팩터의 귀에도 들어간다. 그는 빵을 먹기 위해 쿠키와 루의 진흙바닥 노점을 찾아온다. 미식가인 팩터가 우유 맛을 알아내면 큰일이다. 도둑은 곧바로 처형이다. 쿠키와 루는 불안감에 떨면서도 아직 돈이 더 필요하다. 죽을지도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장사를 지속한다.

영화 ‘퍼스트 카우’는 없는 게 많은 ‘서부극’이다. 말을 타고 황야를 질주하는 쾌남도 없고, 멋진 사내들이 술집에서 박진감 넘치는 싸움을 펼치는 장면도 없다. 강도질을 할 만한 은행도, 일확천금의 쾌재도, 영웅이 악당을 물리치는 쾌감도 없다. 거친 사내들이 등장하나 하나같이 꼬질꼬질하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넘쳐나는 야만적인 개척지의 군색한 삶이 스크린에 복원된다. 역사에는 있었으나 스크린에선 누락되곤 했던 옛날 옛적 진짜 서부 이야기가 담겼다. 이 영화의 미덕이다.

영화는 서부를 배경으로 우정의 의미를 전한다. 쿠키와 루는 숲에서 처음 만났다. 쿠키가 벌거숭이 상태로 누군가에게 쫓기던 루를 도와주면서 인연을 맺었다. 쿠키는 어려서 고아가 됐고, 루는 어렸을 적 중국을 떠나 곳곳을 전전했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둘은 곧 서로에게 기대어 새로운 삶을 모색한다. 약자의 연대다. 영화는 두 사람의 위험한 사업으로 서스펜스를 만들어내면서 둘의 남다른 우정으로 마음을 울린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문구는 이 영화의 메시지를 선명히 전한다. ‘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 인간에게는 우정.’(윌리엄 블레이크)

올해 국내 개봉한 영화 중 열 손가락 안에는 충분히 들 수작이다. 감독은 켈리 라이카트.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국 독립영화의 간판이다. ‘올드 조이’(2006)와 ‘웬디와 루시’(2008), ‘어떤 여자들’(2016) 등으로 주변부 미국인의 삶을 전해왔다. 라이카트는 앞서 ‘믹의 지름길’(2010)로도 대안적 서부극의 가치를 보여줬다. 서부 개척 시기 역경에 맞서는 여성들의 사연을 통해서다. 배고픔과 지저분함과 공포가 일상이었던 삶을 여성의 시선으로 그리며 잊힌 역사를 일깨웠다. ‘퍼스트 카우’는 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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