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정청래 의원의 국정감사 발언으로 조계종, 해인사에 누를 끼친 점에 대해 사과하며 유감을 표한다."
1일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수석대변인이 최고위원회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뜬금없이 불교계를 향해 연신 허리를 숙였다. "당 차원의 입장"이라고 강조하면서다.
불교계를 향한 민주당 지도부의 사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달 20일 송영길 민주당 대표실. 조계종 총무부장 금곡 스님 등 불교계 인사들의 항의 방문을 받은 자리에서도 민주당은 납작 엎드렸다. 이 자리에서 송 대표는 "당 대표로서 공식적으로 정청래 의원의 발언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올리겠다"고 공식 사과했다.
민주당이 잇따라 불교계를 향해 석고대죄에 나서게 된 사연은 뭘까.
시작은 민주당의 사과에서도 언급된 정청래 의원의 국정감사 발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5㎞ 밖 매표소에서 표 끊고 통행세 내고 들어가요. 그 절에 안 들어가더라도 내야 돼요.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요." (10월 5일 문화재청 국정감사)
정 의원은 이날 '문화재 관람료'(문화재 구역 입장료)를 문제 삼으며 이 같은 발언을 내놨다. 문화재 관람료는 말 그대로 문화재 공간에 입장 시 관리 주체에게 내는 비용. "국가지정문화재의 소유자는 그 문화재를 공개하는 경우 관람자로부터 관람료를 징수할 수 있다"는 문화재보호법(1962년 제정)에 따라 징수하는 것이다. 덕수궁이나 종묘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것처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사찰의 경우도 문화재 관람료를 받고 있다.
논란이 된 건, 국립공원을 이용하는 일부 등산객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사찰에 들르지 않고 등산만 즐기고 올 뿐인데, 왜 사찰 관람 비용을 내야 하냐는 불만이다.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면서 이 같은 논란은 더욱 커졌다. 정 의원은 이 같은 일각의 목소리를 대변해 문제제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파장은 컸다. 조계종은 일주일 뒤 정 의원의 사과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조계종은 중앙총회 의장단·상임분과위원장 일동 명의로 낸 성명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청래 의원은 문화재구역 입장료를 '통행세'라고 지칭해 마치 사찰이 국민들에게 요금을 갈취하는 사기꾼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입법 책임을 지는 국회의원이라면 그 책임을 불교계에 전가하며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마치 국민적 불편과 비난을 해결한 소영웅처럼 치부하기 전에 국가적 차원의 문화재 보호정책과 민족문화 계승을 위한 법적 제도 마련과 개선책을 제시하는 것이 먼저"라면서 정 의원의 공개 사과를 촉구했다.
불교계는 정 의원의 발언이 사찰 문화재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사찰 문화재를 전각, 탑 등 경내로만 한정하면서 국민의 오해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 불교계에 따르면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사찰은 전국에 60곳이 넘는데, 국립공원만 보면 국보 41점과 보물 160점을 사찰에서 보존 관리 중이고, 동물을 제외한 천연기념물의 50% 이상도 사찰이 소유하고 관리하는 숲에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사찰과 종단이 소유한 문화재와 주변 사찰림 관리를 위해 문화재 관람료 징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들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는 보통 1인당 2,000~5,000원대다.
특히 정 의원이 문제 삼은 해인사의 경우 가야산국립공원의 37.5%에 달하는 천 만평 구역(해인사와 4.5km 떨어진 동구 초입부터 산 정상까지)을 해인사가 소유하고 관리하는 땅인데 모두 명승구역이고 사적지로 분류돼 있는 상황이다. 정 의원의 발언 자체가 사실관계에 어긋난다는 게 불교계의 지적이다.
가을철 등산객이 몰리는 시기마다 떠오르는 문화재 관람료 논란은 불교계에서도 부담스러운 이슈다. 여론의 비난을 뒤집어 쓰느니, 단순히 폐지냐 아니냐를 넘어 수천 년 이어온 전통문화유산을 어떻게 보존해 나갈지에 대한 건설적 논의가 필요하단 입장.
이원욱 국회 정각회 회장이 송 대표와 불교계와의 만남 자리에서 "불교계 입장에서도 굉장히 억울한 문제다. 국가에선 사용료를 주지도 않고 국립공원과 명승지로 지정되면 땅을 활용할 수도 없는 와중에 국민들의 원성을 불교계가 다 받고 있다"고 불교계 편을 든 발언도 그런 맥락이다.
민주당의 거듭된 사과에도 불교계의 공분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조계종 문화부장인 성공 스님은 정 의원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지하철 망원역 앞에서 정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출퇴근 시간에 맞춰 이어가고 있다.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 부회장인 초격 스님은 지난 송 대표와의 만남에서 "정청래 의원의 사과 없이는 민주당 소속 관계자 모두의 조계종 사찰 출입을 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