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 왕따 논란' 나혼산 여행 어떻게 기획됐나보니

입력
2021.11.01 13:15
0면
MBC 시청자위원회서도 비판
"아이템 취소 혹은 기안84에 사실대로 얘기했어야"
예능센터장 사과

지난 8월 MBC 간판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선 '왕따 논란'이 불거졌다. 연예인들이 웹툰 작가 기안84를 따돌리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잡음이 일기 시작한 건 그달 13일 전현무와 기안84의 '마감 여행' 편이 방송을 탄 뒤다. 기안84가 10년 동안 연재한 웹툰 '복학왕'을 끝내자 이를 축하하는 여행을 함께 떠나는 내용이었다.

훈훈하게 시작했던 방송은 후반으로 갈수록 분위기가 꽁꽁 얼어붙었다. 기안84는 이 여행을 위해 '나 혼자 산다' 회원들과 함께 입을 단체 티셔츠를 만들고, 폐가 체험 등의 이벤트까지 준비했지만, 전현무 외 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제작진의 '몰래카메라'였던 것이다. 이를 두고 전현무는 기안84에 "서프라이즈"라고 웃으며 말했다. 몰래카메라를 통한 특정 출연자 골려 먹기는 그간 TV 예능의 주 웃음 소재였다. 하지만 방송 후 '나 혼자 산다' 시청자 게시판을 비롯해 온라인은 제작진을 향한 비판으로 발칵 뒤집혔다.


'이경규 몰카' 땐 '맞고' 지금은 '틀린'데...

학교도 아니고 '나 혼자 산다' 출연자들이 미성년자들도 아닌데 왜 이번 몰래카메라에 시청자들은 유독 불쾌함을 쏟아낸 걸까.

시대가 변하면서 콘텐츠 소비 문화가 달라졌는데, 제작진이 그 변화를 간과한 탓이 컸다. 여럿이 한 사람을 망신 주고, 이 모습을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건 '이경규의 몰래카메라'가 유행했던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린' 제작 방식이다. 기안84가 동료들이 오지 않는 소식을 듣고 낙담하는 모습이 방송될 때, 정작 스튜디오에 나와 있는 출연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여행에 함께 하지 못했다고 했는데, 스튜디오 안에서 여러 출연자들은 마스크도 쓰지 않고 줄줄이 앉아 있었다. 여럿이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을 요즘 시청자들이 불편해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상황에 분노하는데 제작진이 이를 놓친 것이다. '왕따 논란'이 불거진 뒤 기안84가 방송에 나와 "저 '왕따' 아녜요"라고 웃으며 해명하고, 제작진이 "불편을 드렸다면 죄송하다"고 사과문을 냈는데도 잔불이 여태 꺼지지 않은 배경이다. '나 혼자 산다' 기안84 마감 여행 편 논란은 시청자의 요즘 예능 소비 흐름과 제작 윤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이정표 같은 사례다.


8월 2일 오후, 모두 떠나려 했지만.... 마감 여행 제작 뒷얘기

이 기획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최근 공개된 MBC 시청자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나 혼자 산다' 제작진은 실제로 기안84의 웹툰 연재 마감을 기념해 모든 출연자가 오랜만에 모이는 기획을 추진했다. 어렵게 출연자들의 일정을 맞춰 8월 2일 오후로 촬영 일자도 잡았다. 처음에는 MC인 전현무와 기안84가 먼저 출발하고 나머지 멤버들이 후발대로 깜짝 등장하는 안이었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8월 초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조치가 내려지면서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정부는 오후 6시 이후에는 사적 모임을 2인 이하로 제한했다. 제작진은 "녹화를 끝내고 출발하면 밤이 되는 그 시간에 4인 이상이 모이는 정모를 감행하기에는 당시 여러 가지 우려가 되는 상황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9월, 2020 도쿄올림픽 여자 국가대표팀 소속이었던 김연경과 김수지, 양효진과 김희진 등 네 명은 함께 캠핑을 떠났다. 이를 두고 제작진은 "국가대표 배구팀 선수들은 백신 접종 완료자에 해당했다"며 "2인 플러스 2인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나 혼자 산다'는 리얼리티가 중요한 프로그램이라, 시청자가 야외에서 여럿이 모이는 것을 위험하다고 판단할 수 있어 당시 기안84 합동 여행을 포기했다는 게 제작진의 주장이다.


시청자위원회에서도 지적... "아이템 취소하거나 기안84에 알렸어야"

'나 혼자 산다' 기안84 '마감 여행' 편의 제작 계기와 과정이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답변은 MBC 시청자위원회가 해당 회차의 논란을 문제 삼으면서 이뤄졌다.

전진수 예능기획센터장은 "잘못된 결정이 나온 것에 대해 제작진도 가슴 아파하고 있다"며 "당시에 아이템 자체를 취소하거나, 기안84에게 오늘 어쩔 수 없이 둘만 가기로 했다고 사실대로 이야기해주고 촬영했으면 이런 비난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사과했다.

양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