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미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던 옛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얼마 전까지도 서로 총구를 겨눴던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에 합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상황에서, 이들에 대항할 유일한 세력이 IS의 아프간 지부 격인 IS-K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옛 아프간 정부 소속 군인과 정보 요원이 IS-K로 잇따라 전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간 수도 카불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정부군 특수요원이었던 사촌을 비롯해 최소 4명이 IS-K 조직에 입대했다”고 신문에 털어놨다. 탈레반 고위 사령관인 마우라위 주베어도 “최근 IS-K가 저지른 카불 동물원 폭발 사건에 정부군 출신이 100% 연루돼 있다”고 확신에 차 말했다.
옛 아프간 정부군의 ‘전향’이 계속되는 건 사실상 탈레반에 대항할 수 있는 무장 조직이 현재로선 IS-K가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지난 8월 탈레반의 재집권에 반대하는 세력이 아프간 북부 판지시르주(州)에 모여 저항군을 조직하고 항전에 나섰지만, 한 달 후 탈레반의 대공세로 사실상 궤멸됐다. 탈레반이 표면적으로는 옛 정부 출신 인사를 사면한다고 선언했다 해도, 신변 위협이 이어지고 있어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IS-K 밖에 없는 상태가 됐다. 라마툴라 나빌 전 아프간 국가안보국(NDS) 국장은 “일부 지역에선 IS-K가 굉장히 매력적”이라며 “큰 저항세력이 있었다면 그곳에 합류했겠지만, 지금은 IS-K가 (탈레반에 맞설 만한) 단 하나의 무장단체”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IS-K의 군사적 역량도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WSJ는 “정부 출신 요원들이 정보 수집, 전쟁 관련 전문기술을 IS-K에 전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서방 진영의 고위 관리도 “사담 후세인 축출 후 이라크에서 일어난 현상과 비슷하다”며 “당시에도 해산된 이라크 보안군 병력이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 조직에 흘러 들어갔다”고 경고했다.
IS-K가 세력을 키워 탈레반에 대항한다면, 아프간에선 또다시 혼란이 불가피하다. 둘 다 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를 주장하지만, 세부적 종파가 달라 상호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탈레반은 IS-K에 대해 ‘우리 정권을 위협할 요소는 아니다’라면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주베어 사령관은 “아프간의 경제적, 행정적 문제만 해결되면 IS-K는 보름 만에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