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인데 반갑지 않은' 토지임대부, 최초 입주자만 로또

입력
2021.11.02 05:30
14면

편집자주

※서민들에게 도시는 살기도(live), 사기도(buy) 어려운 곳이 되고 있습니다. 부동산은 치솟고 거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집니다. 이런 불평등과 모순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 도시 전문가의 눈으로 도시를 둘러싼 여러 이슈를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주택과 부동산 정책, 도시계획을 전공한 김진유 경기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3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28> 토지임대부주택, 저렴하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

반값아파트를 공급하겠다며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결론적으로 실패한 10여년 전의 토지임대부가 다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당시에도 학자들을 중심으로 이 제도의 한계와 효과에 대해 많은 경고가 있었지만, 뭔가 신선한 정책이 필요했던 정부에 의해 야심차게 추진됐다. 그러나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지금까지 단 763가구 공급에 그쳤을 뿐 아니라 개발이익 환수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왜 이 제도를 재활성화시키자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주택가격 앙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토지임대부가 가진 치명적인 약점과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또다시 성급히 시행한다면 극히 일부에게 로또가 될 뿐, 집 없는 많은 서민들에게는 배신감만 심어줄 공산이 크다.

공공토지임대제도의 다면성

토지임대부는 분명 매력적인 제도다. 토지비는 내지 않고 주택건축비만 부담하므로 입주부담이 대폭 낮아지고 공공도 소유권을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말이다. 그러나 오랜 경험을 가진 해외 사례를 보면 이 제도는 우리가 단기간에 서둘러 도입할 수 있는 간단한 제도가 아니다. 토지비축, 임대료 책정, 재건축, 토지회수 등을 둘러싼 다양한 한계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더 중요하게 검토해야 하는 점은 토지임대부가 실질적으로 주거비를 낮춰 서민 주거안정에 기여하느냐다. 일부에게 과도한 개발이익만 안겨주고 서민 주거안정에 별 도움이 안 된다면 굳이 채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공공토지 임대제도가 있는 대표적인 나라는 영국,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등 사민주의 색채가 강한 북유럽 국가, 싱가포르, 홍콩 등 국토가 협소한 아시아 도시국가, 중국, 폴란드 등 체제전환국가 등이다. 호주 캔버라와 같이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재원조달 수단으로 토지임대제도를 특별히 도입한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이 각 국가는 역사적인 맥락과 토지희소성, 주택시장 상황 등 다양한 배경 아래 공공토지임대제도를 도입하고 있으나 세계적으로 봤을 때 아주 보편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웨덴은 1907년 스톡홀름시에서 처음 공공토지임대제도를 시행한 이후 1930~40년대에 다른 도시로 확대했다. 꾸준한 토지비축을 통해 스톡홀름시는 전체 토지의 70% 정도를 공공이 소유하고 있으며 신도시나 주택공급이 필요할 때 공공토지를 매각하지 않고 임대한다. 1896년 토지임대를 시작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시도 전체의 80%를 소유하고 있다. 비교적 늦은 1966년에 토지임대법(Leasehold Act)을 제정한 핀란드 헬싱키시도 68% 정도를 공공이 소유 중이다. 이들 도시에서 공공토지임대제도는 저렴한 주택공급에 요긴하게 쓰일 뿐 아니라 토지임대료 수입을 통해 재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다.

북유럽의 토지임대제도의 가장 긍정적인 측면은 저렴한 자가소유를 촉진할 수 있고 토지임대료를 통해 지가상승이익을 공공이 환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1990년 후반부터 공공토지임대가 축소됐는데, 본래 의도와 다른 부정적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선 최초 계약자에게 너무 큰 개발이익이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들은 저렴한 토지임대부 주택을 공공으로부터 분양받은 후 의무기간을 채우면 시장가격으로 매각해 큰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토지를 임차(leasehold)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소유(freehold)한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토지임대부 주택의 가격은 일반 토지소유 주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난감한 것은 개발이익 환수를 위해 토지임대료를 인상하게 되면 거주자의 실질 주거비가 상승해 원래 취지가 훼손된다는 것이다.

토지임대부의 예견된 실패

2005년 여름부터 이른바 반값아파트 논의가 시작됐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시세의 반값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묘안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반신반의하던 토지임대부는 2006년 당시 야당 유력 서울시장 후보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핵심 이슈가 됐다. 일부 시민단체는 토지에 대한 권리는 모든 사람이 공유한다는 이른바 지공(地公)사상까지 동원해서 토지공유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토지임대부제도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그런데 주택학자들이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제도가 조삼모사에 가깝다는 비판이 많았다. 토지비가 분양가에 포함되지 않으니 처음 입주할 때는 저렴하지만, 결국 개발이익을 공공이 환수하기 위해 토지임대료를 현실화하면 해당 주택에 거주하면서 지불하는 비용은 별 차이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결국 초기 입주부담을 줄이는 것 외에 큰 의미가 없는 제도라는 것이다.

다양한 비판이 있었지만 토지임대부의 유혹은 강렬했다. 결국 정권이 교체된 이듬해인 2009년 10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촉진을 위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된다. 이렇듯 정부의 기대와 전폭적인 지원을 업고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성적은 초라하다. 충분한 공공토지 확보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과는 다른 우리 국민들의 주택에 대한 정서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우선 시범사업이었던 경기 군포시의 경우 국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389가구 모집에 40가구만 청약해 0.1대 1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뒀다. 토지소유권이 없는 분양주택이 처음일 뿐 아니라 입지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입지가 좋은 서울 서초구 보금자리에 2011년 분양한 전용 82㎡ 토지임대부주택은 분양가가 2억 원이 조금 넘었는데, 현재는 평균 12억 원의 시세를 형성하고 있으니 최초분양자는 10억 원을 벌었다. 개발이익 환수는 언감생심이다. 전세가도 이미 5억 원을 넘어 일반분양아파트에 맞먹는 수준이니 세입자들은 별 혜택을 보지 못했다. 결국 처음 분양받은 사람만 수혜를 독점했을 뿐, 그 외의 기대효과는 거두지 못한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토지임대부로 어느 정도 효과를 본 나라들의 공통점은 공공이 오래전부터 저렴하게 토지를 비축해서 공공소유 토지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토지임대료를 낮게 받아도 손해가 나지 않고 오히려 도시재정에 도움이 된다. 또한 필요하면 시장안정화 효과를 기대할 만큼 대량으로 토지임대부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떠한가. 금방 수용한 토지를 개발해서 임대해야 하니 토지비를 회수하지 못하면 적자가 불가피하다. 또한 모든 개발을 토지임대부로 할 수도 없으니 물량도 극히 적다. 언 발에 오줌 누기다.

토지임대부, 너무 큰 기대는 버려야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해외의 토지임대부도 대부분 개발이익을 환수하지 못했다. 호주 캔버라 토지임대부 담당자가 한 말이 생생하다. “캔버라의 모든 유권자는 토지임대부 주택에 거주하고 있으므로 토지임대료를 시세대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공약을 하면 무조건 선거에서 지기 때문이다. 결국 1971년 토지임대료를 폐지하고 일시금으로 전환함으로써 지가상승이익 환수는 불가능해졌다.” 토지임대료 현실화가 어려운 것은 북유럽도 마찬가지다. 자칫하면 토지임대부의 부활은 또 하나의 로또를 생산하고 공공사업자의 사업성만 악화시킬 수 있다.

누구든 극한상황에 몰리면 구세주나 만병통치약을 찾는다. 주택시장의 불안이 최고조에 달한 지금 뭔가 신박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단숨에 문제를 해결해줄 마법 같은 제도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우리가 토지임대부로 소기의 성과를 얻고자 한다면 서둘러서는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미개발지에 공공토지를 비축하는 전략을 통해 충분한 공공토지를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개발이익 환수는 못한다 해도 저렴한 자가촉진이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