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인한 희생과 상처를 가슴 아파하셨다. 이 시대의 과오는 모두 당신이 짊어지고 갈 테니, 미래세대는 우리 역사를 따뜻한 눈으로 봐주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31일 선친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띄웠다. 30일 국가장을 모두 마친 노씨는 페이스북에 장문의 추모 글을 올렸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명암과 함께 살아오신 인생, 굴곡 많은 인생을 마감하셨다. 그토록 사랑하던 조국과 가족을 뒤로하시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이제 편하게 쉬시기를 바란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최초의 직선제 대통령이었지만, 군사 쿠데타와 5·18 무력 진압 등 피의 죄과로 얻은 성취였다. 노씨는 그런 선친의 '공'을 거듭 조명했다. 고인이 "비굴하지 말아라.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라"라고 강조했다면서 “아버지가 6ㆍ29 민주화선언(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결단하고 북방정책이라는 자주외교를 펼치게 된 것은 이 같은 신조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노씨는 “아버지는 완벽한 분은 아니셨다. 허물도 있고 과오도 있으셨다”며 노 전 대통령의 역사적 죄과를 부인하진 않았다. 고인이 지병으로 약 10년간 거동하지 못하는 사이, 노씨는 아버지의 죄를 대신 씻기 위해 애썼다. 2019년 8월엔 군사 쿠데타 주동자들의 직계가족 중 처음으로 광주 5ㆍ18 민주묘지를 참배하며 사과했고, 이후에도 수차례 광주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노씨는 영영 떠나간 선친에 대한 그리움도 전했다. “아버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 속에도 어머니와 자식들을 위한 공간은 언제나 남겨놓으셨다”며 “사랑하는 아내(김옥숙 여사)를 두고 혼자 갈 수 없어 그 긴 고통의 세월을 병석에서 버티셨나 보다”라고 썼다. 선친을 "최고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어 “아버지는 스스로를 ‘보통사람’이라 칭했고, 한 사람의 위인보다 여러 명 보통사람들의 힘을 더 믿었다”며 “대통령을 꿈꾸지 않았지만, 주어진 역사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고인을 "절제와 중용이 몸에 밴 분"이라고 칭하며 “그렇게 욕심 없으셨던 분이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큰 고통이었다”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수천억 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수감됐고,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천600억여 원을 선고받았으나 특별사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