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 안 하고 어디 갔다 와?"
콜센터 직원인 A씨가 집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단 몇 분 자리를 비웠다고 실장이 호통을 쳤다. 이 일로 눈 밖에 났는지 실장은 틈만 나면 불쑥 A씨 뒤에 서서 모니터를 가리키며 "그딴 거 보지 말고 콜이나 받아라" 하고 윽박질렀다. A씨는 "백신 맞으러 가는 날엔 일도 못 하면서 돌아다닌다고 호통을 쳤다"며 "화장실도 마음대로 갈 수 없다"고 털어놨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콜센터 노동자 중 상당수는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비대면 서비스가 늘면서 콜센터가 해결해야 하는 민원 등이 증가한 탓인데, 이들의 소득은 전과 같거나 오히려 줄었다. 폭증하는 콜을 빨리 처리하라는 상사의 감시에 눈치를 보면서도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폭언과 반말까지 감내해야 하는 게 이들의 삶이다.
31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노동조합 우분투센터가 콜센터 상담사 3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노동 강도가 높아졌다'는 답변이 35.7%로 조사됐다. 반면 소득은 변화가 없거나(69.2%), 줄었다(18.2%)는 응답이 대부분이었고, 소득이 늘었다는 비중은 12.6%에 그쳤다.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하게 하고 휴게시간을 주지 않는 등 회사 내부에서의 부당대우는 여전했다. 가장 많이 겪은 부당대우(중복 선택)는 '이석 금지'와 '점심시간 외 휴게시간 미부여'가 각각 39.7%였다. 점심시간 제한(34.2%), 연차휴가 강요(33.5%), 연차휴가 거부(32.3%), 화장실 사용 제한(17.8%)이 뒤를 이었다.
고객 응대 중 겪는 감정노동과 관련해선, 상담사 중 67.1%가 '갑질이 줄어들지 않았다'고 답했다. '고객이 목소리를 높이거나 화가 난 말투로 말을 한다'는 질문에 상담사 74.5%가 동의했고, 빨리 처리해 달라는 독촉(76.3%), 책임자를 바꿔 달라는 요구(69.8%), 반말이나 무시하는 말투(66.2%) 등도 절반을 훌쩍 넘는 상담사가 경험했다.
콜센터 서비스 불만의 원인을 묻는 질문에선 고객과 상담사 간 인식 차이가 확연했다. 일반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선 '상담사가 직무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 때문'이란 답변이 72.4%, '담당 직원이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 64.4%로 가장 많았다. 반면 상담사들은 '하급 직원들이라 책임질 권한을 가지지 못해서'라는 대답이 74.8%로 압도적이었다. 직무훈련 부족이나 책임감 결여는 각각 44.3%, 35.4%에 그쳤다.
콜센터는 한때 잇따라 집단감염이 터지며 '코로나19 화약고'로도 불렸다. 다닥다닥 붙어 앉는 데다 온종일 말을 해야 하는 환경 영향이 컸다. 1년여가 지난 현재도 노동환경은 나아지지 않았다. '동료와 간격이 1m 이상 늘었다'는 응답은 25.5%, '교대근무 및 재택근무 실시'도 38.5%에 불과했다. 기초적 조치인 '칸막이 설치'(45.8%)마저 절반을 넘지 않았다.
권한이나 보호장치 없이 일감만 떠넘기는 원청-하청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 한, 콜센터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심준형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자리에 앉아 상담만 할 것을 강요하는 탓에 고객 불만을 듣고만 있어야 하는 총알받이로 전락한 것"이라며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감정노동자 보호조치를 적극적으로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필모 우분투 비정규센터장은 "상담 노동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하청 구조, 업무의 자율성 보장 등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