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30일(현지시간) 바티칸은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한 해외 정상 3명을 손님으로 맞았다.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교황청을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특히 이들이 교황에게 전한 '성물'도 눈길을 끌고 있다.
문 대통령은 29일 오전 교황궁을 방문해 교황과 단독 면담을 마친 후 교황에게 비무장지대(DMZ) 철조망으로 제작한 '평화의 십자가'를 선물했다. 문 대통령의 교황 면담은 2018년 10월 이후 3년 만으로, 이번이 두 번째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성서에도 창을 녹여서 보습(농기구에 끼우는 넓적한 삽 모양의 쇳조각)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면서 한반도 평화의 의미를 담은 선물이라고 밝혔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 선물과 함께 "기회가 된다면 북한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의 탄력이 돼 달라"고 부탁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북한에서 초청이 온다면 여러분을 돕기 위해, 평화를 위해 기꺼이 가겠다"고 화답했다. 바티칸은 교황과 문 대통령이 "두 한국 간의 대화와 화해의 증진"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청와대에 따르면, 이날 문 대통령이 선물한 '평화의 십자가'는 이날부터 다음 달 7일까지 '철조망, 평화가 되다'를 주제로 로마 산티냐시오 성당에 전시된다. 이번 전시회를 주관한 통일부는 성당에 DMZ 철조망으로 인해 남북 주민이 갈라진 각 68년을 형상화한 십자가 136개(68년×2)를 설치했다.
문 대통령에 이어 교황청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교황에게 '개인적으로 특별한 동전'을 선물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장남 보 바이든이 장교로 근무하던 여단의 휘장이 새겨진 동전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동전이 '전사와 지도자'에게 주는 선물이라면서 "교황은 내가 만난 이들 중 평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사"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홀리 트리니티(거룩한 삼위일체) 가톨릭 교회 수장고에 보관돼 있던 수제 사제복도 선물했다. 이 선물은 미국 역사의 진보에 가톨릭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의미한다. 백악관은 "홀리 트리니티 교회는 미국 역사에서 노예제와 인종차별 철폐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교회"라면서 "사제복의 보관함은 이 교회의 옛 설교단에서 꺼낸 대리석 석재와 백악관에서 가져온 목재를 재료로 짜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과 90분 가까이 단독 면담을 진행했다. 둘은 국제 문제에 대한 평화적 공동 대응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닮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지도자 가운데 비교적 자유주의 지향이 강하다는 점에서도 통한다. 바티칸은 교황과 바이든 대통령이 "난민·이주민 지원, 기후변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대응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모디 총리는 인도 총리로서는 21년 만에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과 마주했다. 그는 기독교 의례품 중 하나로 인도에서 제작된 은 촛대와 인도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을 소개한 책을 선물했다.
인도는 대부분이 힌두교도지만 전 인구의 1.5%인 약 2,000만 명이 가톨릭 교도로 분류된다. 이 인구만으로도 아시아에서는 필리핀에 이어 두 번째로 가톨릭 교도가 많은 국가로 꼽힌다. '힌두교 우선주의' 논란에 시달리는 모디 총리로서는 종교 자유를 보장한다는 제스처가 절실한 상황이다. 더불어 두 지도자의 공통 의제인 기후변화 대응 또한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모디 총리는 "교황과 다양한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그를 인도로 초청했다"고 트위터를 통해 전했고, 인도 외교부는 교황이 가까운 시기에 인도 방문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바티칸은 "인도와 바티칸 양측의 우호적 관계에 대해 논의했다"고 발표했다. 교황이 마지막으로 인도를 방문한 것은 1999년으로 당시 요한 바오로 2세가 뉴델리를 방문해 '아시아의 교회'라는 제목으로 문서를 공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