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쉰 쿠에바스의 괴력…KT의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을 이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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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3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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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KT 감독은 경기 전 "결국 여기까지 왔다"고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허삼영 삼성 감독은 "하늘이 준 기회"라고 했다. 그만큼 부담이 큰 쪽은 막판에 추격을 허용한 KT였다. 8일 휴식 후 등판하는 원태인(삼성)과 불과 이틀 쉬고 나서는 윌리엄 쿠에바스(KT)의 선발 맞대결도 삼성 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렸다. 장소는 삼성의 홈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였다.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시즌 내내 1위를 달린 KT를 외면하지 않았다. KT가 31일 대구에서 열린 KBO리그 역사상 첫 단일리그 1위 결정전에서 삼성을 1-0으로 꺾고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의 쾌거를 이뤘다. 2013년 10구단으로 창단 후 8년 만이고, 2015년부터 1군 무대에 뛰어든 지 7시즌 만이다. 이는 8시즌 만에 정규시즌에서 우승한 NC, SK보다 빠른 역대 최단기간 우승이다. KT는 2015∼2017년 최하위(10위), 2018년 9위로 인고의 시간을 보낸 뒤 2019시즌 6위로 성장했고, 지난해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하며 강팀의 반열에 올랐다. 그리고 2021년 마침내 정규시즌 챔피언으로 우뚝 섰다.

두 팀은 전날 정규시즌 144경기 일정을 마칠 때까지 동률(76승9무59패)을 이루면서 이날 번외로 '145번째 단두대 매치'를 벌였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에서 우승 결정전이 열린 건 1986년 후기리그에서 동률의 성적으로 마친 OB와 해태의 타이브레이커 이후 35년 만이다. 1989년 단일리그 체제 도입 이후엔 처음이다.

쿠에바스의 혼신의 역투가 만든 우승이었다. 쿠에바스는 7이닝 동안 99개의 공을 뿌리며 단 1피안타 2볼넷 8탈삼진 무실점으로 삼성 타선을 잠재웠다. 이틀 전 NC전에서 108개를 던진 투수라고는 믿기지 않는 투구였다. 팽팽한 투수전의 균형은 6회에 깨졌다. KT는 상대 실책으로 만든 2사 1ㆍ3루에서 강백호의 좌전 적시타로 이날 유일한 점수를 뽑았다. 쿠에바스는 7회말 KT 우익수 재러드 호잉의 포구 실책 탓에 1사 1ㆍ3루 위기에 몰렸지만 강민호를 2루수 뜬공, 이원석을 삼진 처리하며 위기를 벗어난 뒤 포효했다.

이강철 KT 감독은 경기 후 "우승 놓치면 억울하고 창피할 것 같았다. 약자에게 좋은 일이 생기지 않나. 불리한 여건이었지만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서 "2인자로 선수 생활을 마쳐 지도자로 1위 하고 싶었는데 이뤄냈다"고 기뻐했다.

원태인도 6이닝 2피안타 1실점(비자책) 8탈삼진으로 호투했지만 웃지 못했다. 삼성은 비록 6년 만의 정규시즌 우승에 실패했지만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암흑기를 뚫고 나와 2010년대 초반 '왕조'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편 전날 최종일에 나머지 숨막혔던 순위 경쟁도 끝났다. LG는 3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키움은 KIA와의 최종전을 승리하고 SSG의 패배로 5위를 차지,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투타 개인타이틀의 주인공도 모두 가려졌다. 특히 이정후(키움)는 시즌 최종 타율 0.360(464타수 167안타)을 기록, 데뷔 5년 만에 타격왕을 차지했다. 아울러 아버지 이종범(1994년)과 함께 최초의 '부자 타격왕'이 됐다. 대를 이은 타격왕은 일본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에서도 없는 기록이다. 투수 부문에서는 두산의 에이스 아리엘 미란다가 평균자책점(2.33점)과 탈삼진(225개) 2개 부문을 석권했다. 미란다는 1984년 최동원(223탈삼진)이 보유했던 종전 한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도 경신했다.

KBO리그는 1일부터 곧바로 가을야구에 돌입한다. 4위 두산과 5위 키움은 1일 오후 6시 30분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와일드카드 1차전 선발로 곽빈(두산)과 안우진(키움)을 각각 예고했다.

성환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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