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가는 뱃길은 순했다. 취항한 지 한 달 됐다는 2만 톤급 크루즈선은 요람처럼 편안했다. 울릉도 오가는 여객선 가운데 최대 규모라는 말이 실감났다. 1,200명 정원의 여객선엔 700명의 관광객이 탑승했다. 저마다 섬을 찾는 목적은 다르겠지만 울릉도 하면 오징어다. 싱싱한 오징어를 맛본다는 기대감에 휴가로 떠나는 울릉도 뱃길이 설레기만 했다. 더구나 9월부터 12월까지 오징어 성어기다.
□ 그러나 오징어 순례는 험난했다. 크루즈에서 내린 첫날 수산물 보고라는 저동항을 찾았지만 허탕이었다. 어시장 수조는 텅텅 비어있었다. 파고가 높아 채낚기 어선이 거의 출항하지 못했다고 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 이튿날도 사정은 마찬가지. 섬을 떠나는 마지막 날 실낱같은 기대로 들른 포구에서 어렵게 오징어를 만날 수 있었다. 시장을 통틀어 딱 한 군데 수조에서 제철 오징어 10여 마리를 발견했다. 옥신각신 흥정 끝에 두 마리를 구했다. 마리당 1만 원의 가격은 흥정거리도 아니었다. 사흘 만에 오징어를 구한 게 감지덕지했다.
□ ’울릉도 오징어’는 옛말이 된 듯했다. 울릉군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모든 오징어 기록이 급전직하다. 1만 톤에 이르던 연간 어획량은 최근 수백 톤 규모로 줄었고 수백 척을 넘나들던 채낚기 어선은 120척으로 급감했다. 최하규 울릉읍장은 “성어기에 200척씩 출항하던 오징어잡이 배들이 이젠 손가락으로 셀 정도”라고 했다. 채낚기 어선의 집어등이 밤마다 섬 주변을 환하게 밝히던 풍경은 박물관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 “10년 전에는 개도 오징어를 물고 다녔다”는 포구 앞 식당 주인의 회상은 더더욱 믿기지 않았다.
□ 주민들은 온난화에 따른 어장 변화와 중국어선의 무차별 남획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특히 북한수역 조업권을 따낸 수백 척의 중국어선이 동해상에서 오징어를 싹쓸이하는 게 문제라고 한다. 우리 채낚기 어선과 달리 중국어선은 저인망 조업으로 오징어 씨를 말린다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돌아오는 뱃길 위로 ‘울릉도 트위스트’가 일렁거렸지만 신나게 흥얼거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