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400만원 떼이는 요양보호사..."원래 그런 줄 알았는데"

입력
2021.11.0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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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재원 받는 민간 요양기관, 임금 착복 만연
정부 기준 미비해 돌봄 노동자들 희생만 강요

['반값' 돌봄 노동자의 눈물] ① 민간기관의 임금 착복


편집자주

아동·노인·장애인 등을 돌보는 돌봄 노동자는 110만명.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한 축을 떠받치고 있지만, 이들은 다른 노동자들 평균 임금의 절반만 받고 있습니다. ‘반값’으로 매겨진 돌봄 노동 문제를 <한국일보>가 3회에 걸쳐 짚어봤습니다.


수도권의 한 요양원에서 5년째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김진옥(가명·52)씨는 늘 최저임금을 받았다. 주 40시간, 한 달에 7, 8일 야간 근무를 하지만 야간수당을 포함한 월급 총액은 201만 원(세후 실수령액 179만 원). “원래 그런 줄 알고 일했다”는 김씨는 얼마 전에야 자신이 받아야 할 돈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보건복지부 산하 장기요양위원회가 정한 올해 월급제 요양보호사 인건비는 239만8,000원이다.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급여와 요양시설이 부담하는 4대 보험료, 퇴직급여적립금 등을 합한 금액이다. 야간근로수당은 추후 정부에 청구해서 받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는다.

야간근로수당(13만7,000원)을 뺀 김씨의 월급 총액은 187만 원. 요양원 측이 부담하는 4대 보험료·퇴직급여적립금(총 30만 원가량)을 더해도 요양원이 지출한 김씨 몫 인건비는 약 217만 원에 불과하다. 정부에서 요양원에 준 인건비보다 30만 원 정도 적었다.

김씨는 “그동안 20만, 30만 원을 덜 받았다는 걸 알고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싶었다”며 “정부에서 인건비를 그렇게 정했으면 강력하게 다 주라고 해야 하는데 정부가 방치하니 결국 한 사람 호주머니(요양원 측)에 다 들어가는 거 아니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와 세금으로 인건비를 받는 요양보호사들이 임금 중간 착복(중간착취)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민간 요양시설이 정부에서 받은 인건비를 모두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이 없고, 인건비에 대한 감독·처벌조차 거의 없다.

이런 구조 때문에 돌봄 노동자들이 속한 사회서비스 종사자는 전체 산업 임금 평균의 절반 정도(53.1%)에 해당하는 심각한 저임금을 전전한다. 공공재원이 일하는 노동자에게 가지 않고, 엉뚱한 사람의 주머니만 채우는 것이다.

돌봄 노동자는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섰고, 2025년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선다. 우리 사회는 돌봄 노동자들 덕분에 '삶의 질'을 높이고 있지만, 이들의 저임금 구조를 방치하며 희생만을 강요하고 있다. 한국일보 마이너리티팀은 돌봄 노동자들을 취재하고 '반값 돌봄'의 구조를 살펴봤다.



요양시설 10곳 중 8, 9곳은 정부 인건비보다 덜 줘

노인들의 집으로 방문해 치매 인지교육, 운동 등을 돕는 방문 요양보호사 신지은(가명·57)씨. 노인 3명을 돌보는데, 노인이 소속된 방문요양센터에 따라 시급 1만1,000~1만1,300원을 받는다. 하지만 장기요양위원회에서 정한 방문 요양보호사의 올해 시급은 1만3,038원. 센터가 부담하는 4대 보험료 등을 빼도 시간당 1,000원 넘게 덜 받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기준을 정해 센터에 돈을 주지만, 실제로는 센터장 마음대로 정해진다. 신씨는 “센터장들끼리 시급 1만1,000원만 주기로 담합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우리는 계속 일을 해야 하니까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는 45만 명에 달하는 대표적인 돌봄노동자다. 장기요양위원회가 매년 수가를 결정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장기요양기관에 이를 지급한다. 수가는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비용으로, 인건비와 관리운영비 2가지를 더해 정해진다.


하지만 요양위원회에서 정한 인건비를 제대로 받는 요양보호사는 거의 없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이 지난 7월 전국 104개 기관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 104명의 급여명세서를 분석한 결과 요양시설의 96%, 방문(재가)센터의 80%가 정부가 정한 인건비보다 적게 지급하고 있었다. 월급제 요양보호사는 수가상 인건비보다 평균 34만1,490원, 시급제 방문요양보호사는 시간당 평균 1,268원을 적게 받고 있었다.

강은희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단순 계산으로도 요양보호사 1인당 1년에 400만 원이 넘는 금액”이라며 “이는 요양기관 운영자가 근로자를 상대로한 조직적인 ‘착복’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시설규모가 작을수록, 개인이 운영하는 시설일수록 인건비를 적게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급 담합하고 퇴직금·수당 착복

시설 운영자들은 인건비를 덜 주려 각종 편법을 쓴다. 방문 요양센터의 경우 인건비 담합이 대표적. 신지은씨는 “몇 년 전 대부분의 방문센터가 시급 1만 원을 줄 때 시급 1만2,000원(치매환자 인지수당 포함)을 주는 센터가 있어 내가 속한 센터에 말해 내 시급도 1만2,000원으로 올린 적이 있다”며 “그런데 처음 1만2,000원을 줬던 센터장이 다른 센터장들로부터 항의와 비난에 시달렸고 지금은 그곳도 최저임금만 준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퇴직금을 주지 않기 위해 몇 개월씩 쪼개기 계약을 하는 사례도 흔하다. 요양보호사 이모(57)씨는 “7년 동안 민간 방문센터 여러 곳에서 일했지만 퇴직금은 한 번밖에 못 받았다”며 “몇 월에 입사하든 근로계약서는 무조건 12월 31일까지만 썼고, 만약 1월부터 계약을 하면 10월쯤 센터에서 ‘실업급여를 받으라’며 계약을 해지한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지급하는 인건비에 퇴직급여적립금도 포함돼 있지만 이를 지급하지 않는 것이다.

또 정부에서는 4대 보험료도 모두 지급하지만 주당 15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는 보험 가입 의무가 없다는 점을 악용, 15시간 미만으로만 일감을 주고 보험료를 착복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이씨는 “장기근속수당 등 각종 수당을 안 주는 곳도 많고, 민간 시설은 완전한 무법지대”라며 “그런데도 요양보호사들이 대부분 나이가 많은 여성이라 말도 못 하고 일한다”고 말했다. 장기요양시설 중 98%가 민간시설이다.

요양보호사들이 복잡한 임금 체계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하기도 한다. 서비스연맹 임금실태조사 면접조사에선, 방문 목욕 서비스를 하는 요양보호사에게 목욕 수당을 줘야 하는데 시급이 더 싼 방문요양수당을 준 경우도 있었다.

김진옥씨는 “요양보호사들이 수당을 높여 달라고 하면 요양원에선 항상 ‘매달 몇 천만 원씩 손해를 보며 운영한다’고 툴툴거렸다”며 “확인은 안 됐지만 요양보호사 수십 명한테 20만, 30만 원씩 덜 준 돈이 결국 회삿돈이 된 거 아니겠냐”고 말했다.



복지부의 허술한 규정, 제재도 거의 없어

온갖 편법이 판치는 것은 임금 관련 제도가 너무 허술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수가를 산정할 때 요양보호사의 인건비를 책정하고, 시설이 지급받은 수가 중 일정 비율(올해 기준 요양시설 65%, 방문요양센터 86.6%)은 반드시 인건비로 지출하도록 법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그러나 요양서비스에 종사하는 4개 직군(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물리치료사)의 인건비를 모두 합해 이 비율을 지키면 된다. 즉 요양보호사에게는 최저임금만 주고, 다른 직군에 더 높은 급여를 주면 이 비율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시설들이 친·인척을 사회복지사로 등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특정 직원에게 ‘월급 몰아주기’를 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나마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 기관이 훨씬 많다. 지난해 건보공단이 요양기관 735곳의 인건비 지출 비율 준수 여부를 조사한 결과 비율에 미달한 기관이 473곳(63%)이나 됐다. 이 비율을 지키지 않으면 지방자치단체가 시정명령, 업무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지만 지금까지 행정 처분을 받은 곳은 한 곳도 없다. 정부 한 관계자는 "지자체가 요양시설 설립·허가권과 감독 및 행정처분 권한을 가지지만 정작 돈은 건보공단이 지급하다보니 지자체가 시설의 재무·회계를 잘 관리하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또 시·군·구가 최소 인원만 이 업무에 투입하고 있어 한계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8년 요양보호사의 적정 임금을 담보하겠다며 지출 비율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월급제 요양보호사 인건비 239만8,000원은 (4대 보험료 등) 시설이 인력을 운영하는 데 드는 총액으로 임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4대 보험료, 퇴직급여적립금 등을 제외해도 임금을 훨씬 덜 받는 것에 대해서는 "이용자가 70명인 시설을 기준으로 책정된 것으로 시설 규모에 따라 시설과 노동자가 합의해서 근로계약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법정 최저임금과 인건비 지출 비율제도만 어기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인건비조차 비공개... 전문가들 "투명화해야"

복지부는 수가는 매년 고시하지만 이 중 인건비가 얼마인지는 따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인건비가 얼마로 책정됐는지 알아야 요양보호사들이 근로계약을 할 때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지만 복지부는 "(수가 중 인건비가 임금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인건비를 공개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인건비를 투명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현행 지출 비율 제도는 요양보호사가 제대로 받는 건지, 누수가 되는 건지 불신을 조장하는데다 정부가 통제하기도 어렵다”며 “정부가 요양보호사의 ‘표준 임금’을 고시하는 방법으로 투명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미영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회복지시설 노동자들의 처우가 워낙 안 좋으니까 복지부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인건비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처럼 요양보호사들도 임금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며 "정부에서 공공부문 용역·민간위탁 업체 소속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적정한 임금을 주도록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국요양서비스노조, 공공연대노조 등 5개 단체는 돌봄 임금을 최저임금의 130%로 명문화하는 '돌봄노동자 기본법' 제정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봉근 공공연대노조 정책국장은 "돌봄 노동자 임금에 대한 기준을 법으로 정하지 않으면 최저임금만 받는 현실이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값' 돌봄 노동자의 눈물]

①민간기관의 임금 착복

②'내 돈' 내며 영업까지

③대가 없이 좋은 돌봄은 없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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