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서리는 예부터 백성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 여세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임금의 엄한 명령을 추상(秋霜) 같다고 표현했을까. 그토록 무섭게 느껴지는 서리가 지난 주말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산야를 덮었다. 공교롭게도 절기상 첫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에 말이다.
하지만 서리가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풍경을 반갑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강원 인제군 갑둔리의 한 비밀스러운 숲에 가면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군 훈련장소로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어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지난 주말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소식에 수많은 관광객들이 비밀의 숲을 찾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해가 떠오르자 서리가 살포시 내려앉은 아름다운 숲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명의 빛이 은은하게 스며든 숲은 ‘동화 속 나라’ 같았고, 어디선가 요정이 불쑥 나타나 인사를 건넬 것 같았다.
옛사람들은 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두려운 존재로 생각했을까? 궁금해 하던 차에 문득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서리를 비유한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이는 채근담(菜根譚) 중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로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대하되, 자신에 대해서는 가을 서리처럼 차갑고 엄격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강에 내린 서리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다시 한번 마음속에 되새기고 싶은 글귀다.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