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이별을 통보한 연인의 집 앞에서 밤새워 눈물 흘리며 기다리고, 고백을 거절하는 짝사랑 상대에게 아침저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는 카페 직원에게 매일같이 꽃다발을 안겨주는 일. 행위자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서술한다면 아마도 운명적 사랑에 빠져 절절한 구애를 보내는 로맨티스트의 사연이 완성될 것이다.
앵글을 바꾸어 행위를 당하는 사람의 시선으로 바라보자. 누군가 밤마다 집 앞을 기웃거리고 만나기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상대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수시로 안부 메시지를 보내며, 내 얼굴과 이름을 모두 아는 타인이 매일같이 직장에 꽃을 들고 찾아오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이야기의 장르는 삽시간에 소름 끼치는 스릴러로 바뀐다.
이토록 완전히 상반된 해석이 가능한 이 이야기들은 지난 세월 동안 늘 당연한 듯이 로맨스로 분류되어 왔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거나 '용기 있는 자가 미녀를 얻는다'와 같은 먼지 냄새 텁텁한 수식들이 그 해석을 거들었다.
금전 문제나 원한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면 심각한 위협으로 판단되었을 행위들도 그 동기가 애정이라면 감정선이 일방인지 쌍방인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치정 싸움'으로 끌어내려졌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의 행동은 우스운 해프닝 정도로 축소되고, 피해자의 불쾌감과 공포는 몇 번 다독이면 사라질 수줍은 당혹감인 양 눙쳐졌다.
철저히 한쪽에만 너그러운 무심함 속에 비극은 꾸준히 그리고 잔혹하게 발생했다. 구애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가족이 보는 앞에서 목숨을 잃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별을 통보한 상대에게 가족이 무참히 살해당하는 것을 보아야 했다. 이 사건들을 '빗나간 애정' '일그러진 사랑' 정도로 수식하는 이들에게야 이러한 흐름이 경악스러운 반전으로 읽히겠으나 오랜 기간 피해를 호소했던 이들로서는 예정되어 있던 참사였다.
지난 3월 25일, 스토킹 처벌법이 22년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로 다음 날, 자신의 연락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한 여성과 그 동생, 어머니를 모두 살해한 남성이 체포되었다. 피해 여성은 사건이 일어나기 두 달 전부터 계속해서 괴롭힘을 당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법이 조금만 더 일찍 가해자의 행동을 '구애 행위'가 아닌 범죄로 분류해 제지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을 사건이었다.
스토킹 처벌법이 발효되기까지는 그 후로 반 년이 더 걸렸다. 발효일인 10월 21일 이후, 시행 첫 주간 500건에 가까운 신고가 쏟아졌다. 행위의 심각성이 인정되어 가해자가 구속된 사례도 생겼다. 짧은 시일 내에 그만큼의 범죄를 잡아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나 이제껏 우리가 '애정 다툼'으로 치부하며 외면해 온 범죄가 몇 건일지 역산해보면 눈앞이 아득해진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잡아 낸 범죄를 더 이상 놓치지 않는 것이다. 가해자의 협박에 겁먹은 피해자가 움츠러들지 않도록 피해자 보호 방안을 세심하게 덧붙이고, 가해 행위의 범주를 실효성 있게 설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제껏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타인을 해쳐 온 이들에게 단호히 말해 주어야만 한다. 지금 당신이 하는 그 행위는 질 나쁜 범죄일 뿐, 낭만이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