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해 빈국 아이티가 극심한 연료 대란까지 겪으며 대혼란에 빠졌다. 연료 대란의 원인은 갱단. 주요 연료 수송 터미널이 위치한 지역을 갱단이 장악하면서 휘발유와 경유 수송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갱단이 도로를 봉쇄하고 수송 중인 연료를 탈취하거나 수송트럭 기사까지 납치하면서 공급을 포기하는 업체들도 속출하고 있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선 주유소 기름이 바닥나면서 교통량이 크게 줄었고 더이상 유지가 불가능한 상점들은 속속 문을 닫고 있다. 연료 부족으로 발전기조차 가동을 할 수 없게 되자 통신 기지국도 가동을 멈췄고, 그로 인한 통신 장애에 치안 마비 사태까지 더해지면서 시민들의 불안과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애초부터 열악한 전력 사정 탓에 자체 발전기에 의존해 온 병원들 역시 연료가 없어 전기 생산이 불가능해지면서 산소호흡기 등 응급환자를 위한 의료기기 가동마저 전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아이티의 치안 악화 탓에 몇 주 동안 연료 부족이 심화했다"며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의료시설에 있는 수백 명의 여성과 아이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시민들의 고통이 극심한 가운데 수도권 9개 갱단이 연합한 'G9'은 아이티 내 연료 공급을 쥐락펴락하는 한편, 내외국인 800여 명을 무차별 납치하는 등 아이티를 무법천지로 만들고 있다. 최근 G9 두목은 연료를 볼모 삼아 총리 사퇴까지 압박하고 있다. G9 두목 지미 셰리지에는 25일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앙리 총리가 다음 날 오전 8시에 물러난다면 우리는 8시 5분에 도로 봉쇄를 해제하겠다. 연료 수송 트럭도 통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2019년 기준 150개 이상이던 아이티 내 갱단 수는 최근 대통령 암살과 지진 등 잇단 국가 위기를 겪으면서 크게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경우 지역의 40%가 갱단 손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