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대선은 벌써 최악이란 평가다. 2012년 대선의 화두였던 복지 논쟁은 언감생심이다. 지난 대선에서 기대 이하였던 후보들이 외려 나아 보인다는 말도 많다. 여야 유력 후보들은 수사선상에 오르내리고 상대당 후보를 범죄자 취급한다. 시대정신이 안 보이고 후보 수준도 낮은데 상대를 대하는 규범도 허물어졌다. 국민의힘 홍준표 대선 경선 후보는 “내가 대통령이 되면 이재명 후보는 반드시 구속된다”고 공언했고,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 돼도 (고발 사주 의혹은) 탄핵 사유”라고 했다. 공공연한 이 말들이 현실이 될 것이 끔찍하다. 어느 쪽이 집권하든 특검·탄핵의 보복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곱씹을수록 유권자 편향도 문제다. “찍을 후보가 없다”면서도 합리적 후보를 밀지 않는다. 범죄적 의혹과 숱한 실언, 퇴행적 공약이 큰 문제가 안 된다. 비호감도가 호감도의 2배인 후보들을 두고 ‘더 싫은 쪽을 떨어뜨리는’ 선택을 할 뿐이다. 우리 국민의 정치적 양극화는 세계에서 가장 극심한 수준이다. 최근 공개된 퓨리서치센터의 선진 17개국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정치적 입장이 다른 이들 간 갈등이 심하다’는 응답 비율이 90%로 미국과 함께 최고였고(17개국 평균 50%), 느끼는 갈등 정도는 미국에 이어 2번째였다.
국민의 정치적 양극화와 청산 정치는 동전의 양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 수감까지 보복적인 수사를 지켜봤고 감정이 쌓였다. 후보들은 쉽게 구속·탄핵을 언급하고, 현실이 될까 봐 막장 싸움을 벌인다. 그러면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회 현안, 미래를 내다볼 기회는 잊히고 묻힌다.
우리는 내 편이 이기면 과연 내 삶이 나아지는지 따져보기를 잊은 듯하다. 중대재해처벌법 폐지(홍준표 후보 공약)로 기업의 비용 지출을 줄여주는 것이 과연 노동자 목숨을 희생해서 이뤄야 할 일인가. 성범죄 무고죄 처벌을 강화(윤석열 후보 공약)하면 성범죄 처벌을 어렵게 하는 부작용을 능가하는 이익이 남자들에게 돌아온다는 걸까. 전두환 전 대통령 비석을 밟는다고 해서(이재명 후보) 그로부터 고통받았던 이들이 위로받을까. 주 4일제나 노동시간 연장 같은 공약은 들춰보지 않은 채 증오의 카타르시스만으로 내 삶이 나아지리라는 느낌은 착각이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엘리트 기득권층과 이민자·소수자를 비난하며 블루칼라 백인 유권자의 지지를 흡수했지만 그 수혜자는 부자 감세 혜택을 누린 최고 부유층이었다.
30여 년 전 대선을 치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에서 내 가슴을 움켜쥔 것은 국가장에 반대하는 성명이나, 조문 가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을 옹졸하다고 비난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상황실장 박남선씨가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하는 장면이었다. 고인의 장남인 노재헌씨가 수차례 광주를 찾아 사과한 것에 응답한 것이다. 박씨는 “이제 더는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시점이 되지 않았는가”라며 “지역·계층·정치세력들이 하나 된 대한민국을 위해서 오늘을 기점으로 화해하고 화합하고 용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광주시가 조기 게양이나 분향소 설치를 하지 않기로 한 결정 또한 공감하지만 아픈 과거를 미래의 토양으로 삼는 길은 박씨의 조문 같은 것이다.
우리 편이 이길 수만 있다면 누가 후보가 되든 상관 않는 선거, 비전과 정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복과 청산을 부르짖는 선거는 또 하나의 비극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대선이 담고 있는 시대정신은 정치 개혁의 요구인 듯하다. 지긋지긋한 편가르기와 보복의 정치를 넘어서자는 정치 개혁 목소리가 분출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