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의혹의 핵심인 손준성(47)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에 '손 검사 등 검찰 간부들 지시로 검찰 내에서 고발장 자료 수집과 작성이 이뤄졌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손 검사와 함께 지시한 간부와 지시를 받은 검찰 관계자 모두를 '성명불상(성과 이름을 알 수 없음)'으로 적시, 공수처가 의혹에 관여한 인물들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손 검사 구속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한국일보 취재 결과, 공수처가 지난 23일 법원에 청구한 손 검사 구속영장에는 "손 검사 등 성명불상의 상급 검찰 간부들이 성명불상의 검찰 관계자에게 고발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고발장을 작성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손 검사 등의 지시에 따라 검찰 내부에서 고발장의 자료 수집과 작성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결국 손 검사가 누군가에게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 함으로써 결국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저질렀다는 게 공수처 판단이다.
법조계에선 공수처가 손 검사를 제외한 상급 검찰 간부나 검찰 관계자를 '성명불상'으로 표기한 점에 주목한다. 구속의 필요성을 주장하기에 앞서 전제가 돼야 할 '범죄 소명' 부분이 허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현직인 손 검사를 구속하려면 최소한 손 검사가 지시한 내용과 지시받은 인물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영장에 넣었어야 했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하기엔 수사가 너무 부실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수사 전략의 일부'라는 해석도 있다. '손 검사 조사를 위한 신병 확보'가 구속영장 청구의 목적이었던 만큼, 손 검사에게 미리 수사의 '패'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핵심 피의자인 손 검사에게 수사 상황을 노출하기 껄끄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와 손 검사는 이날 구속영장 청구 통지 시점을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이어갔다. 손 검사 측은 이날 오전 입장문을 통해 공수처 L검사가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 직전인 26일 오전 구인장을 집행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구속영장 청구하고 바로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팀의 방침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그러나 손 검사 측 주장을 부인했다. "손 검사 측에 '상부 지침'으로 늦게 통보했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반박 입장문을 낸 것이다. 손 검사 측은 여기에 ‘영장청구 사실을 언론에 먼저 알렸다’며 의도적으로 통보를 늦게 한 것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